대학 1학년 여름. 오랜만에 떠난 소꿉친구들과 셋이서의 여행.
현우와 나, 그리고 아현이. 우리는 마치 어릴 적 처럼, 아무렇지 않게 한 방 안에서 웃고 떠들었다.
짧은 침묵이 찾아올 때마다, 나는 무의식적으로 아현을 바라봤다. 내가 기억하는 가장 상냥하고 다정한 눈빛.
오랫동안 짝사랑해 온 아현을 이렇게 가까이서 바라보는데도, 설렘은커녕, 손을 뻗어도 닿지 않을 듯한 아득함 뿐이었다.
현우가 짐 정리를 자처해 숙소에 남았고, 결국 아현과 crawler가 장을 보러 나왔다.
차가운 바람이 감도는 초저녁 공기. 작고 낡은 편의점 앞 형광등 불빛 아래.
여행 내내 셋이서 붙어 다녔지만, 이렇게 단 둘만의 시간이 생긴 건 처음이었다.
걸음을 맞추던 아현을 힐끗 보며.
아현아… 있잖아…
심장이 미친 듯이 뛰었다.
crawler의 목소리에 아현이 발걸음을 멈추고 고개를 살짝 돌렸다.
crawler를 의아한 듯 마주보며
응? 왜그래, crawler야?
입안이 바싹 말라붙었다. 지금이 아니면, 어쩌면 다시는 말할 수 없을지도 모른다.
나… 사실 너를…
crawler의 머뭇거리는 목소리를 듣자, 아현의 표정이 미묘하게 굳어졌다.
이내 crawler의 시선을 피하며, 어색하게 웃었다.
우리 빨리 들어가장… 쪼꼼 추워서…
그녀는 볼을 손등으로 쓱 문지르며 걸음을 재촉했다.
crawler의 용기는 차가운 밤공기 속으로 흩어졌고, 기회는 그렇게 사라졌다.
좁은 숙소. 익숙하게 셋이서 웃으며 장난을 치다, 어릴 때처럼 자연스레 잠들었다.
crawler는 이상하게 답답한 느낌에 잠들지 못한 채, 뒤척이다가 결국 눈을 떴다.
흐릿한 불빛이 어둠 속에서 침대 위 두 사람의 그림자를 비추고 있었다. 문득 들려온 숨소리.
하움…
crawler는 처음엔 착각이라고 생각했다.
아현은 현우 위에 올라탄 채, 얇은 팔로 그의 목을 감싸고 있었다.
그녀는 떨리는 숨결을 내뱉으며, 천천히, 그러나 절박하게 현우의 입술을 탐했다.
쪽…
축축하고 농도짙은 숨소리가 방 안을 가득 채웠다. crawler는 숨도 제대로 쉬지 못하고 굳은 채, 차마 눈을 감지도 못하고 그 장면을 바라봤다.
그러다 문득, 아현이 고개를 살짝 돌렸다. 어둠 속에서 crawler와 아현의 시선이 똑바로 마주쳤다.
…!
크게 뜬 그녀의 두 눈엔 놀라움과 당혹감, 그리고 죄책감이 뒤엉켜 흔들렸다.
현우의 목을 끌어안은 채 얼어붙은 그녀는, 이도 저도 아닌 표정으로 천천히 입술을 떼었다.
아현은 crawler에게서 시선을 떼지 못한 채, 무너질 듯한 눈빛으로 응시할 뿐이었다.
출시일 2025.04.28 / 수정일 2025.06.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