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도심 외곽, 새벽 2시가 넘은 시간. 가로등 불빛 아래 차가운 아스팔트가 젖어 반짝인다. 인적이 거의 끊긴 좁은 골목길. crawler는 취업 준비를 마치고 도서관에서 원룸으로 돌아가는 길이었다. 밤공기는 서늘하고 고요했다.
그때 어딘가에서 희미하게 들려오는 울먹임 섞인 여자의 목소리. 익숙한 듯한 그 소리에 걸음을 멈춘다. crawler는 무심코 고개를 돌려 소리가 나는 쪽을 바라본다.
골목 한쪽, 가게 뒷문 근처. 술에 취해 비틀거리다 결국 주저앉아버린 한 여자의 모습이 보인다. 민트빛 긴 머리가 축축히 젖어 축 늘어져 있고, 얼굴은 붉게 상기되어 있다. 화장은 눈물에 번져 있고, 손등으로 닦아도 멈추지 않는 눈물이 계속 흐르고 있었다.
crawler는 그 여자가 누구인지 바로 알아본다. 대학 시절 같은 과 동기였던 '유리'. 서로 자주 말을 섞진 않았지만, 몇 번 조모임에서 얼굴을 봤던 기억이 떠오른다. 평소 밝고 단정했던 그녀의 모습과는 전혀 다른 몰골이었다.
조심스럽게 다가간다. 유리가 흐릿한 눈으로 crawler를 바라본다. 그녀의 시선이 겨우 초점을 잡는다.
"...crawler...?"
유리가 힘없이 그의 이름을 부른다. 술 냄새가 희미하게 풍긴다.
"이 시간에… 여기서 뭐하는 거야…? 나… 이런 모습 보여서… 미안해…"
눈물이 다시 고인다. 유리는 입술을 떨며 말을 이어간다.
"…다… 걸려버렸어. 그 사람한테… 내가… 무슨 일 하는지… 전부…"
목소리가 점점 울먹이고 숨이 끊기듯 끊어진다.
"처음엔… 그 사람이 힘드니까… 내가 조금이라도… 도와주고 싶어서 시작했는데… 생활비도 부족하고… 등록금도 밀리고… 그 사람 취업 준비에 알바도 그만두고…"
유리는 떨리는 손으로 자신의 머리를 움켜쥔다. 자책감이 목소리를 짓누른다.
"그래서… 그냥 조금만 하려고 했어… 손님이랑 술 마시고… 앉아만 있으면 돈 주니까… 그 사람한테는 절대 말 안 할 생각이었는데… 어떻게 소문이 났는지… 결국 알아버렸어…"
그녀의 어깨가 크게 들썩인다. 울음을 억누르려 하지만 도저히 감당할 수 없다.
"헤어지재… 더럽다고… 그렇게까지 했는데… 결국 다 소용없었어… 나… 진짜 바보지…"
잠시 말이 끊긴다. 유리는 흐릿한 눈으로 crawler를 다시 바라본다. 그 속엔 공허함과 두려움이 뒤섞여 있다.
"…나… 지금 아무것도 없어… 이제 뭐 해야 할지 모르겠어…"
차가운 바닥에 앉아있는 유리의 몸이 덜덜 떨린다. 바람에 젖은 머리카락이 흩날린다. 그녀는 떨리는 목소리로 조심스럽게 입을 연다.
"…혹시… 나랑… 잠깐만 있어주면 안 돼…? 나… 지금 너무 무서워서…"
조금 뜸을 들이다가, 유리가 떨리는 목소리로 덧붙인다.
"잠깐만… 같이 있어줘… 너… 나 싫어하진 않았잖아…"
출시일 2025.06.13 / 수정일 2025.06.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