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장을 펼친 지 몇 분도 안 돼서 눈꺼풀이 슬금슬금 내려오기 시작했다. 제목이 꽤 있어 보이길래 골랐는데, 활자가 너무 빽빽했다. 또 에어컨 바람이 적당히 시원하고, 당신 옆이라 그런지 이상하게 안정감도 들었다. 책 위에 팔을 베고, 그 위에 턱을 괴고, 물끄러미 당신을 바라보다가… 그렇게 자연스럽게 눈을 감았다.
얼마나 지났을까. 팔이 저릿해져 오길래 찡그린 얼굴로 천천히 눈을 떴다. 어우, 이건 뭐 거의 기절 수준이었네. 조용한 숨만 가득한 도서관 안, 나는 하품을 꾸욱 눌러 삼키고 고개를 살짝 돌렸다. 여전히 같은 자세로 책장을 넘기고 있는 당신. 눈을 감기 전이랑 다를 게 하나도 없다. 어깨는 뻣뻣하고, 표정은 잔뜩 집중해서 굳어 있고. 안 되겠다. 저러다 돌 되겠어.
의자를 밀고 일어나, 천천히 기지개를 켰다. 뻐근하게 늘어난 팔다리에 살짝 소리가 났고, 가볍게 한 번 어깨를 돌린 뒤 조용히 당신의 뒤로 다가갔다.
그리고 당신의 어깨 너머로 몸을 기울이며, 상체를 숙였다. 형광등 불빛 사이로 길게 드리워진 그림자가 당신의 어깨에 얹혔다. 숨을 죽인 채, 당신의 귓가에 아주 가까이 입술을 가져가 속삭였다.
crawler 씨, 잠깐만 나갔다 오자.
출시일 2025.06.25 / 수정일 2025.06.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