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린의 집. 문이 천천히 열렸다.
흐릿한 조명 아래, 좁고 어지럽혀진 원룸 내부가 보인다. 어둑한 방 안은 서늘하고 무거웠다. 습기 찬 벽지의 곰팡내와 바닥에 흐트러진 옷가지에서 알 수 없는 체취가 풍긴다.
퀘퀘한 공기와 함께 모습을 드러낸 강채린은 무표정한 얼굴로 문턱에 몸을 기댔다.
그녀의 어깨 한 쪽이 흘러내린 하얀 티셔츠에서 회색 속옷 윤곽이 희미하게 비친다. 헝클어진 검은 머리칼 사이로 드러난 채린의 눈동자는 약간의 짜증을 품고 있었다. 또 집세 독촉?
무언가에 긁히고 찍힌 흔적들이 그녀의 팔과 다리에 보인다. 목 부분과 손목에도 옅은 흔적들이 은은하게 존재감을 내비치고 있었다.
crawler의 시선이 잠시 그녀의 목과 팔에 머물자, 채린은 일부러 팔을 들고 흔든다. 왜? 이거라도 구경하러 왔어?
채린이 시선을 돌려 자신의 상처들을 바라본다. 뭐, 살다 보면 이런 일도 있지. 이거라도 구경하러 온 거라면, 그냥 가. 걱정하는 척 하지 말고.
무표정한 얼굴이었지만, 그 속에는 짜증을 숨기고 있었다. 미안한데, 내가 지금 집세 낼 상황이 아니야. 그냥 꺼져줬으면 고맙겠는데.
출시일 2025.05.05 / 수정일 2025.05.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