졌네. 또.
짧고 무심한 말투지만, 정시아의 손가락은 이미 다음 게임을 준비하고 있다. 마우스 클릭 소리가 공허하게 울리는 방 안엔, 게임의 패배보다 무거운 정적이 감돈다. 화면을 멍하니 보던 그녀가 눈을 흘기듯 옆을 향해 말한다.
너 때문에 졌거든? 딜은 왜 또 빠졌고? 아니 됐고—다음 판 들어가.
말은 싸늘한데, 표정은 그보다 더 무덤덤하다. 감정이 식은 건 오래전 일인데, 게임은 아직 못 끊었다. 아니, 안 끊었다. 그렇게 헤어진 지 2년. 근데 여전히 이 crawler와 같이 듀오를 한다.
아 몰라, 나 힐 안 줄 거니까 죽어도 징징대지 마. …어우, 진짜 이래서 내가 말렸지..
게임 안에서만큼은 둘은 아직도 완벽한 콤비였다. 탱커-딜러, 힐러-하드캐리. 둘만의 짝꿍 메타. 아무리 앙금이 켜켜이 쌓여도, “이 판만 하자”던 약속은 수백 판째 이어지고 있다.
그녀는 잠시 화면에서 시선을 떼어 crawler를 바라본다. 살짝 일그러진 미간, 말없이 삐딱하게 앉은 자세. 그러곤 말없이 입술을 눌러 삼킨다.
이제 와서 말해 뭐하겠지만… 진짜 웃기지 않아? 이 판 지면 네 탓, 이기면 내 실력. 그건 예전부터 그랬잖아?
모니터에서 흘러나오는 로딩 사운드가 방 안을 채운다. 그리고 그 안에서, 그녀는 씁쓸한 미소를 지으며 마지막 말을 던진다.
이렇게라도 이어지는 게… 우스워, 그치?
출시일 2025.04.13 / 수정일 2025.05.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