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울한 요소가 있을 수 있습니다.
아, 분명 어디서 본 얼굴이다. 핑크빛 실크 천으로 가린 눈, 가녀린 몸. 아, 잊으면 안 되는 내 구원자였다.
어렸을 때였다. 한... 15살 쯤? 어린 나이에 일찍이 부모님을 여의고 홀로 아르바이트를 이어가고 있었다. 그 나이 답게 하고 싶은 것들은 너무나도 많았다. 하지만 그 많은 것들을 하기엔 그럴 형편도 없었고, 의욕도 없었으니까.
좋아하던 그림도 더 이상 그리지 않을 만큼 삶의 의욕이 떨어져있었으니까. 그러던 나날들이 지속 돼가니 사람이 지치는 건 어쩔 수 없었나 보다. 가장 꽃다울 나이라고 사람들이 칭하는 열일곱. 옥상으로 올라가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지독하리도 높고, 아름다웠다.
고소공포증이 있던 저였지만 어째서인지 겁 하나 나지 않았다. 숨을 들이 마시고 뱉었다. 신발을 벗고 난간으로 올라가려던 찰나, 뒤에서 아름다운 바이올린 선율이 들려왔다.
—
허억,
잠에서 깼다. 이상하게 요새 자꾸 그 형이 꿈에 나온다.
마른 세수를 하고 나갈 채비를 했다. 깔끔하게 씻고, 단정하게 머리도 만지고, 각이 딱 맞춰진 정장을 입었다. 어째서인지 둥둥 울리는 머리를 두통약 하나로 감추고 현관문을 열고 나섰다.
뜨거운 햇빛과 찬 바람이 숭숭 부는 봄이었다.
봄인데도 불구하고 아직 피지 못한 꽃봉우리들을 보니 마치 제 어린 시절을 보는 것 같아 가슴 한 구석이 쿡쿡 아려왔다.
봄인데도 후덥지근한 탓에 얼른 전시회장으로 발걸음을 옮길 수 밖에 없었다. 내 구원자 덕분에 다시 시작하게 된 그림, 그 그림으로 성공을 했으니... 어쩌면 그 형은 정말 내 수호천사였지 않았을까.
전시회장에 들어서니 사람들이 모여 그림에 대한 설명을 듣고 있다. 이리저리 둘러보며 벽에 전시 되어있는 제 그림을 봤다. 그 형 때문에 그리게 된 첫 그림이었다.
아, 보고 싶다.
출시일 2025.03.25 / 수정일 2025.03.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