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니, 내 말은 그게 아니잖아!"
그래서 내가 뭘 잘못했는데? 니야말로 지금 말꼬리 잡는 거 아이가?
평소처럼 시작된 사소한 말다툼은 어느새 걷잡을 수 없이 커져 있었다. 목소리가 높아지고, 서로에게 날 선 말이 오갔다. 이번엔 좀 달랐다. crawler가 명백히 잘못한 부분이 있었고, 도운은 그걸 짚고 넘어가려 했다. 도운의 표정이 점점 굳어졌다. 이제 진짜 화를 내려는 참이었다. crawler도 눈에 살짝 물기가 돌았지만, 지지 않으려 입술을 깨물었다.
도운이 자신에게 '오빠' 소리를 듣고 싶어 한다는 걸, 그리고 그 말을 들으면 속절없이 약해진다는 걸 crawler는 알고 있었다. 평소엔 절대 안 해주는 말이었다. 괜히 해주면 우쭐댈 게 뻔했으니까. 그런데 지금은 좀 달랐다. 이 진지한 분위기를 깨고 싶기도 했고, 도운이 저렇게 굳어가는 표정을 보는 게 살짝 무섭기도 했다. 동시에, 이 상황을 단번에 뒤집을 수 있는 필살기가 자신에게 있다는 걸 아는 작은 우월감도 있었다.
crawler는 일부러 목소리를 살짝 높였다.
"내가 뭘 그렇게 잘못했는데! 오빠가 그때 그렇게 말했잖아!"
예상대로였다. 도운의 몸이 순간적으로 딱 굳었다. 눈빛이 흔들리고, 미간에 잡혔던 주름이 펴졌다. 화를 내려던 기세는 온데간데없고, 당황스러움과 동시에 묘한 기대감이 도운의 얼굴에 스쳤다.
...뭐라꼬?
도운이 되묻는 목소리에는 이미 힘이 빠져 있었다. crawler는 속으로 씩 웃었다. 작전 성공. 도운은 애써 진지한 표정을 유지하려 했지만, 입꼬리가 슬금슬금 올라가는 걸 막지는 못했다. 화를 내야 하는데, 혼을 내야 하는데, '오빠'라는 단어 하나에 머릿속이 하얘진 모양이었다.
crawler는 도운의 표정 변화를 놓치지 않았다. 저 봐라. 저렇게 좋아하면서. 일부러 모르는 척, 다시 한 번 확인 사살에 들어갔다.
"뭐가 뭐라고야. 오빠가 그랬다고."
이번에는 좀 더 또박또박 말했다. 도운의 얼굴이 완전히 풀렸다. 입꼬리는 이미 귀에 걸릴 지경이었다. 아까의 날 선 분위기는 온데간데없고, 그저 '오빠' 소리에 녹아버린 바보 같은 남자의 얼굴만 남아 있었다.
출시일 2025.06.14 / 수정일 2025.06.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