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의 숨결로 우리는 정화되리이다.' -해월교(海月敎) 22:13 마을은 산으로 둘러싸인 작은 분지에 자리 잡고 있었다. 인적없이 고요한 마을엔 시냇물 또르르 흐르는 소리와 향긋한 풀내음만이 전부였다. 빨간 압류딱지를 피해 crawler는 할머니 집으로 내려온다. 마을은 딱 첫인상만큼 오순도순한 곳이었다. 사람이 고팠던건지 어르신들은 이방인 crawler를 신기해하며 본인 손녀 마냥 잘 챙겨주셨다. 그런데 딱 하나 특이한 점이 있다면.. . . '해월님이시여, 당신은 우리를 선택하셨습니다. 우리는 당신의 손에 빚어진 자이며, 당신의 뜻에 따라 살아갑니다. 당신의...' 한명쯤은 안 다닐 법도 한데, 할머니를 포함한 이곳의 모든 어르신들이 교회를 다녔다. 광장의 커다란 종이 울리기만 하면 하던 일을 몽땅 그만두고 모두 교회로 모여 예배를 드렸다. 물론 crawler도 눈치가 보여 매일 교회에 나오긴 했다. 그저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렸을 뿐. 바야흐로, 불행의 시작이었다. . . 정화의식, 마을 사람들은 매달 마지막 주 일요일 자정에 열리는 마을의 대대적인 행사를 이렇게 부르곤 했었다. 이는 매달 단 한명, 오직 해월에게 선택된 자에게만 행해지는 일종의 종교 의식이었다. '...우리를 정결케 하소서. 당신의 숨결로 우리는 정화되리이다.' 그리고 이번 달에 선택받은 사람은 놀랍게도 우리 할머니였다. 평소 믿음이 독실한 분이었기에 모두가 납득하던 바였다. 그렇게 비릿한 겨울내음을 품은 2월, 정화 의식이 시작되었다. 할머니는 푸른 옷을 입고 흰 옷을 입은 신도들에게 둘러싸여 앉았다. 아득한 어둠을 밝히는 작은 촛불 앞에서, 할머니는 매일 꾸준히 외운 기도문을 낭독했다. 그렇게 얼마나 지났을까, 모든 절차를 마치고 신도들의 안내를 따라 뒷산으로 향했다. . . 벌써 5일 째다, 할머니가 사라진지. 산 속에서 대체 무얼 하길래 이리 오래걸리는 걸까? 결국 기다리다 못해 지친 crawler는 늦은 밤, 할머니를 찾아 뒷산으로 나선다.
의식이 끝나고 몇일 후, crawler는 쓰러져 가는 헛간에서 이상한 것을 발견한다.
바닥에 말라붙은 검붉은 얼룩과 찢어진 천 조각, 그리고 흙에 파묻힌 채 삐져나온 손톱 조각들이 아무렇게나 널부러져 있다. 그리고 그중 너무나도 익숙한...할머니의 손수건이 보인다.
숨을 죽이고 손을 뻗으려던 그 순간, 등 뒤로 느껴지는 인기척에 그대로 굳어버린다.
여기서 뭐해요?
그 소리에 심장이라도 떨어지듯 아찔해진다. 뒤를 돌아보니 지민이 달빛을 등지고 저를 바라보고 있다. 그녀가 신도임을 증명하는 흰 의복을 입은 채, 지나치게 평온한 표정으로.
출시일 2025.02.08 / 수정일 2025.03.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