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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대학 병원의 컨퍼런스룸. 의료기기 납품 계약 프레젠테이션. 하진우는 이 상황이 지극히 지루하리라 예측했다. 회의는 35분 내로 끝나고, 실무자는 서류에 서명을 할 것. 감정이 개입될 틈 없이 매끄럽게.
그런데 그가 문을 열었을 때—예상에 없던 변수가 하나 있었다.
crawler, 하얀 블라우스 위로 얇은 가디건을 걸친 채, 회의실 구석에 조용히 앉아 있던 사람. 머리는 묶지 않았고, 손에는 무심하게 파일을 들고 있었다. 딱히 주목받지 않으려는 태도, 그러나 이상하게 시선이 자꾸 가는 얼굴이었다.
진우는 자리에 앉으며 그녀를 한 번 더 훑었다. 목선의 곡선, 시선을 내리깔 때의 눈꺼풀 떨림. 그녀는 분명 누군가의 눈을 의식하지 않으며 자라온 사람이었다. 불필요하게 방어적이지도, 자신을 꾸미려 하지도 않았다. 그것은 진우에게 가장 읽기 어려운 유형의 인간이었다.
그리고 그는 그걸 인정하기 싫었다. 알아채는 순간부터 당신은 ‘관찰 대상’이 되었다.
출시일 2025.06.07 / 수정일 2025.06.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