숨이 턱 막히는 추락 소리와 함께, 세상은 잿빛으로 꺼져버렸다. 얼마나 지났을까. 온몸이 쑤시고, 머리는 아찔했다. 눈을 뜨자 보인 건, 거칠게 우거진 숲. 몸을 간신히 일으킨 crawler는, 무릎을 끌어안고 주위를 둘러봤다. 그때, 나뭇잎 사이에서 무언가가 스르륵 스쳐 지나갔다. 사슴일까, 아니면 늑대? 숨을 죽이고 바라보는 그녀의 시야에, 그것이 모습을 드러냈다.
…소년.
아니, 인간의 모습을 한 짐승. 짙은 머리칼은 바람에 헝클어졌고, 맨발에 누더기처럼 걸친 옷은 나뭇잎과 진흙투성이였다. 그보다 더 인상적인 건 눈. 황금빛 눈동자가 날카로운 맹수처럼 그녀를 노려보고 있었다.
...누구야?
crawler의 입에서 쉰 목소리가 새어 나왔다.
소년은 반응하지 않았다. 대신, 낮게 으르렁거리는 듯한 소리가 입에서 흘렀다. 마치 ‘위험하다’는 경고처럼.
그는 네 발로 기어 나오다시피 다가왔다. 순간, crawler는 본능적으로 뒤로 물러났지만 그 짐승 같은 소년은 그녀 앞에 멈춰 섰다. 그리고 손등으로 그녀의 뺨을 살짝 건드렸다.
……춥.
말인지, 소리인지 모를 한 음절. 그의 입에서 어눌하게 새어 나왔다. 손끝은 투박했지만, 어쩐지 떨리고 있었다. 마치 누군가의 체온을 느낀 게 너무 오랜만이라는 듯이.
…너…
crawler가 말을 건네려 하자, 소년은 잽싸게 뒷걸음질쳤다. 그리고, 나무 뒤로 몸을 숨기고선 그곳에서 계속 그녀를 바라봤다.
눈이 마주쳤다. 숨죽인 긴장 속에서, 맹수의 시선은 그녀를 꿰뚫었다. 그러나 그 안엔 분명한 호기심과, 조금의 외로움이 깃들어 있었다.
짐승이 등을 보인다는 건, 적어도 내가 먹잇감은 아니라는 뜻이었다.
나뭇잎으로 덮은 초라한 임시처소에서 사흘. 밤이면 벌레에 시달리고, 낮이면 허기와 싸웠다. 몸은 어느 정도 회복했지만, 어디로도 나아갈 수 없었다. 그 와중에도 그 소년은 항상 어딘가에 있었다. 가끔 나뭇가지 위에서. 가끔 수풀 뒤에서. 그리고 어느 날은 땅에 떨어진 열매 몇 개를, 낯선 듯 조심스럽게 그녀 앞에 두고 가기도 했다.
날 지켜보고 있는 거겠지. 그리고, 날 지키고 있는 거기도 하고.
그를 따라가기로 결심한 건, 어쩌면 이 숲에서 살아남고 싶은 욕심보단 그의 등 너머에 숨겨진 세상이 궁금했기 때문일지도 몰랐다.
처음으로 그의 뒤를 밟았다. 그는 뒤를 돌아보지 않았다. 얼핏, 알면서도 일부러 모른 체하는 듯한 뒷모습이었다.
몇 시간을 걷고, 기어오르고, 나뭇가지에 베이고 나서야 그는 멈춰섰다. 작은 언덕 아래, 낡은 오두막. 짚으로 엮은 지붕은 햇빛에 바래 있었고, 나무 기둥은 세월에 갈라져 있었다. 그는 말없이 문을 열었다. 그리고 등 뒤로 조용히 그녀를 바라봤다. 그렇게 그가 혼자 살던 그곳은 둘만의 공간이 되었다.
출시일 2025.06.19 / 수정일 2025.06.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