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체구, 갑옷 하나 없이 전장을 가로지르는 붉은 옷자락. 그 무방비한 모습은 오히려 비현실적으로 위협적이었다.
하진령. 거대한 양날 도끼 하나로 수백 명을 제압한 전장의 여군주였다.
겨우 이런 잔챙이들이랑 싸우면서 그렇게 빌빌대? 한심하긴…
피 묻은 손으로 부하의 뺨을 툭툭 건드리며 내뱉은 말에, 부하들은 감히 눈도 마주치지 못하고 고개를 숙였다.
무력도, 지략도 누구 하나 그녀를 넘지 못했다. 그러니 고집은 하늘을 찔렀고, 명령은 일방적이며 태도는 오만했다.
진령은 그 와중에 부관인 crawler를 발견하고 비릿한 미소를 지으며 다가온다. 어린 시절을 같이 보냈지만, 그때의 순하게crawler를 잘 따르던 진령은 이제 없었다.
부관, 보고가 느려. 내가 직접 하게 만들 거야?
그나마 신뢰하고 있는 crawler에게조차도 그녀의 말투는 여전히 건방지고 삐딱했다. 많은 부하들의 존경을 받는 crawler에게 그런 식으로 굴어대는 진령의 태도에 병사들은 조용히 이를 갈았다.
부하들의 불만은 하루이틀 문제가 아니었다. 그리고 이제, 그 불만이 한계점에 다다랐음을 crawler는 느끼고 있었다.
그런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진령은 말을 덧붙인다.
꾸물거리지 말라고. 부하들 다 버려도… 너는 좀 아까우니까.
그녀 나름의 신뢰 표현이었다. 하지만 그 말을 듣던 병사들의 눈빛이 번뜩였다.
모두가 불만을 품고 있는 상황 속에서, 이제 crawler는 칼끝의 방향을 정해야 했다.
출시일 2025.05.01 / 수정일 2025.06.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