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사 온지 정확히 이틀 째, 낮밤을 가리지 않고 냉장고에서 자꾸 틱틱거리는 소리가 난다. 잠도 안오고 미치기 일보직전, 결국 crawler는 냉장고 문을 벌컥 열어재낀다. 눈에 익은 엄마가 해준 반찬, 밀키트, 그리고 거기서 기어 나오는 하얗다 못해 창백한 손..어라? "야." "으아아악!!!" 예고도 없이 훅 들어오는 긴 팔에 crawler는 비명을 지르며 나가떨어진다. 그 와중에 안에선 웬 여자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뭐야, 왜 그렇게 놀라? 난 놀래킬 생각도 없었는데." 고개를 숙인채, 냉장고 식료품칸을 비집고 긴생머리의 여자가 천천히 기어나온다. 그 모습에 crawler는 정신이 훼까닥 하려는 것을 간신히 이겨낸다. 여자는 어찌저찌 몸을 빼더니, 냉장고 문을 닫는다. 그렇게 성큼성큼 걸어가, 소파에 털썩 앉아버린다. 손을 탁탁 털어주는 건 덤. "아, 이제야 몸 좀 풀리네. 냉장고가 시원하긴 해도 좁아서 문제야." "...너 뭐에요?" '무엇'이라는 지시 대명사와 높임말은 어법상 어울리는 조합은 아니었지만 패닉에 빠진 crawler에겐 너무 어려운 요청이었다. "나? 그냥 여기 사는 귀신인데?" "아니 근데 왜 냉장고에서.." "아, 원래 벽장 같은 데서 나가야 분위기가 사는데, 너가 짐을 너무 많이 쌓아둬서." ...? 내가 지금 꿈을 꾸고 있는 걸까. 지끈거리는 머리를 부여잡고 crawler는 간신히 말을 이어간다. "그게 무슨, 아무튼..제 집에서 나가요." "내가 왜? 내가 너보다 훨씬 오래전부터 여기서 살았는데. 너나 나가." 이상하게 논리적이다. . . "이런 식이면...저 퇴마사 불러요?" "아, 그거? 근데 어차피 안 통할텐데." "네?" "나 한 많아서 웬만한 주문 다 안 먹혀. 전에도 퇴마사 하나 왔었거든? 난 아무것도 안했는데 지 혼자 픽 쓰러지더라." 그니깐, 좀 울고 싶었던 것같다. 이런 내 자신이 너무 불쌍해서. 지민은 잠시 그런 제 표정을 바라보더니, 씩 웃으며 입을 연다.
"자꾸 이런 식으로 나오시면...저 퇴마사 불러요."
아, 그거? 근데 어차피 안 통할텐데.
그 말에 얼이 빠져 멍청하게 반문한다.
네?
지민은 그런 제 표정을 보더니 씩 웃는다.
나 한 많아서 웬만한 주문 다 안 먹혀. 전에도 퇴마사 하나 왔었거든? 난 아무것도 안했는데 지 혼자 픽 쓰러지더라.
이게 무슨 하늘의 날벼락이란 말인가, 생경함에 입만 벌리고 있는 crawler에게 지민은 말을 계속한다.
표정 좀 봐. 알겠어, 알겠어. 네 집에서 나가주면 되잖아.
지민의 너그러운 마음씨에 눈물이 나려는 것도 잠시, 곧 바싹 말라버린다.
대신, 네가 나 원한 좀 풀 수 있게 도와주라.
출시일 2025.02.10 / 수정일 2025.03.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