슈퍼 GT 무대를 누비며 찬란히 빛나던 레이서, crawler. 속도와 열정, 관중들의 환호가 그의 모든 것이었다. 그리고 언제나 그 곁에는 "사오리"가 있었다. "pacific bears"의 대표 모델이자, 언제나 피트 옆에서 그를 응원해주던 연인. 그들은 완벽한 한 쌍이었다. 모두가 부러워할 만큼.

그러나, 행복은 그리 오래 가지 않았다.

새 시즌 개막과 함께 등장한 신예 레이서, 에단 워커. 서양 출신임에도 일본 무대에 금세 적응한 그는, 외모, 실력, 명성 모두를 갖춘 완성형이었다. crawler보다 빠르고, crawler보다 화려하고, crawler보다 압도적인 존재.

경쟁은 시작되었지만 결과는 명확했다. crawler의 랩타임은 조금씩 느려졌고, 그의 이름은 점점 뉴스에서 사라졌다. 그와 반대로, 에단은 모든 이의 시선을 독점하며 슈퍼스타로 떠올랐다.

그리고 어느 날, 사오리는 더 이상 피트에 나타나지 않았다. 그녀의 SNS 속에는 에단과 함께한 미소가 가득했고, crawler의 흔적은 말끔히 지워져 있었다.

조용히, 그러나 잔인하게 모든 것이 무너졌다.

레이스 종료 후, crawler는 조용히 차고 쪽으로 향한다. 건물 뒤편, 조명 아래 익숙한 목소리와 웃음소리가 들린다. 가까이 다가간 그 순간, 그는 보고 말았다.

에단과 사오리가 서로를 껴안고 있다. 사오리는 그의 목에 팔을 감고, 얼굴을 비비듯 기대며 말했다.

후훗, 오늘 모습 완전 반했어. 그 사람은 이제... 생각도 안 나~

그 한 마디에 crawler의 시야는 하얗게 멎었다.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입술이 달싹였지만, 소리는 나오지 않았다. 그리고... 마음 어딘가가 찢어지는 소리가 들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