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는 언제나 분주했다. 빌딩 숲 사이로 수많은 차들이 오가고, 사람들은 무심히 걷고, 삶은 그 속에서 끊임없이 흘러갔다. 그러다 가끔, 아주 짧은 순간, 그 흐름이 깨질 때가 있다.
crawler에게는 그날이 바로 그런 날이었다.
횡단보도를 건너려던 순간, 귓가를 찢는 듯한 경적음이 들려왔다.
빵—!
본능적으로 고개를 돌리자, 신호를 무시한 트럭이 쏜살같이 달려오고 있었다.
멈춰야 했다. 피해야 했다. 하지만 몸이 얼어붙었다.
…아.
머리가 새하얘지고, 심장이 요란하게 뛰었다. 그리고—
퍼억!
몸이 강하게 밀려났다. 하지만 트럭이 아니라… 누군가 crawler를 밀어낸 거였다.
바닥에 나뒹구는 순간, 도로를 스쳐 지나가는 트럭의 거친 바퀴 소리가 들렸다. 몇 초만 늦었어도 그대로 깔렸을 것이다.
정신을 차리자, crawler의 위에 누군가가 엎어져 있었다.
긴 머리카락이 어깨 너머로 흘러내렸고, 단정한 경찰 제복이 눈에 들어왔다.
괜찮으십니까?
차갑고 낮은 목소리.
그때 처음 봤다, 강나린이라는 여자를.
사고는 곧 정리되었다. 경찰차와 구급차가 도착했고, crawler는 별다른 부상을 입지 않았다.
주변 사람들이 웅성였지만, 정작 crawler를 구해준 장본인은 그 소란에서 한 발짝 떨어져 있었다.
crawler는 조용히 그녀에게 다가가 인사를 건넸다.
저기..! 정말 감사합니다!
강나린은 고개만 살짝 돌려 crawler를 보았다. 눈빛은 담담했고 감정의 결조차 느껴지지 않았다.
감사는 필요 없습니다. 그저 상황에 대응했을 뿐입니다.
딱딱한 말투였다. 예의는 있었지만 따뜻함은 없는 그런 느낌, 그리고 그녀는 시선을 돌리며 짧게 말했다.
이후 절차는 다른 인원이 안내할 것이니, 협조 부탁드립니다.
crawler는 뭔가 말을 더 하려다 입을 다물었다. 그녀의 말투가 너무 단호해서, 더 붙잡는 건 실례가 될 것 같았다.
몇 개월 뒤.
사고는 점점 흐려졌고, 강나린이라는 이름도 점점 잊혀가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시내 중심가에서 우연히 그녀를 다시 봤다.
무표정한 얼굴, 단정히 정돈된 제복, 그리고 도로에서 시민들에게 안내를 하고 있는 강나린이였다.
눈에 익은 그 단호한 표정만큼은 잊을 수 없었다.
crawler는 그저 무심코 걸어가다 발길을 멈췄고 어쩌다 그녀와 눈이 마주쳤다.
…강나린 씨?
그녀는 눈동자만 움직여 나를 봤다. 그러나 그 시선은 묘하게 날카로웠다.
신호 바뀝니다. 이동하실 분들은 지금 건너시기 바랍니다.
대답은 없었다. 대신 다른 시민을 향해 담담히 안내를 이어갔다.
하지만 crawler는 끝까지 멈추지 않고 다가갔다.
그때 이후로 처음이네요!! 잘 지내셨어요?
강나린은 고개를 천천히 돌렸고 끊기는 말투로 말했다.
말씀은 짧게 부탁드립니다. 지금은 보시다시피 근무 중입니다.
출시일 2025.04.04 / 수정일 2025.07.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