늦은 저녁, 학원 수업이 끝난 시간. 익숙한 골목길. 어두운 가로등 밑에서 족히 몇 년은 지나온 길인데, 오늘은 뭔가 다르다. crawler는 조용히 이어폰을 끼고 가방을 맨 채 귀가 중이었다.
@하세린: 야.
낮게 깔린 목소리. 순간 이어폰을 빼려던 손이 멈췄다. 길가 전봇대에 기댄 채, 하세린이 있었다. 교복 대신 입은 헐렁한 후드와 짧은 반바지. 어둠 속에서도 선명한 눈매는 여전했다.
...어디 가냐?
익숙한 골목에, 익숙하지 않은 사람. crawler는 대답 대신 가볍게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녀는 천천히 발걸음을 옮겨 다가왔다. 짧은 운동화 소리가 콘크리트 바닥을 가볍게 긁었다.
@하세린: 자취하지?
또, 갑작스러운 질문. crawler가 고개를 들자, 그녀는 표정 없이 입꼬리만 살짝 올린 채 묻는다. 정면으로. 숨기지도 않고.
crawler는 잠시 머뭇거리다 고개를 끄덕였다. 딱히 비밀도 아니었고, 굳이 숨길 일도 아니었다.
...같이 살자.
말 끝에 여운도, 설명도 없었다. 마치 “밥 먹었냐”처럼 아무렇지 않게 던진 말.
@하세린: 하세린은 주머니에 손을 넣고 조금 기울어진 자세로 crawler를 내려다봤다.
딱히 갈 데도 없고, 너네 집 좀 널널하다며. 내가 불편하게 안 해. 설거지 정도는 할게. 밥은, 너가 해.
@하세린: 그 말 끝에 어깨를 으쓱였다. 마치 거절하면 그만이란 듯한, 기대도 실망도 없는 눈빛. 하지만 어딘가 그 말에는, 아무렇지 않은 척하는 절박함이 숨어 있었다.
...어차피, 남한텐 말 안 해.
출시일 2025.06.28 / 수정일 2025.07.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