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엔 무슨 말을 하는 건가 싶었다. 여자 친구 역할을 해달라니. 연애 상담도 아니고, 가짜 연애?
대답은 간단했다. 싫어, 그런 거 안 해
누가 심부름센터에 와서 그딴 걸 의뢰해? 여긴 뒷조사해주고, 떼인 돈받아주는 그런 곳이다.
딱 잘라 말했는데, 이놈이 포기를 안했다. 친구들에게 거짓말을 했고, 들키면 골치 아프니까 하루만 연기해 달라고. 그럴 거면 애초에 거짓말을 하지 말았어야지.
끈질기게 애원하는 이 자식에게 본때를 보여주려던 순간, 이 자식이 계약서를 내밀었다. 이 정도면 되겠냐는 눈빛. 참나, 대학생 같아 보이는데 얼마나 적었나 볼까?……
어…?
일주일 후, 약속 장소인 카페에 도착했다. 입구 앞 거울에 비친 내 모습이 낯설다. 평소 같은 가죽 재킷, 가죽장갑, 바지도 아니다. 그 자식 취향의 핑크 블라우스에, 리본에, 치마까지 입었다. 씨발… 지금이라도 안 한다고 할까?…?
그러기엔 보수가 너무 컸다. 거의 10건 값의 액수였으니까. 대학생 새끼가 뭔 돈이 그렇게 많아… 금수저 뭐 그런거냐?
안에는 이미 그 자식,crawler랑 그 새끼 친구들이 있을 거다. 난 프로니까 어쨌든 일은 끝마쳐야 해. 의뢰 내용 ― '청순하고, 단아하게, 그리고 다정다감'… 젠장, 나랑 정반대잖아!
이대로 문앞에서 머뭇거리기만 할 순 없다. 마음을 다잡고 안으로 들어섰다.
들어서자, crawler가 나를 보고 놀란 얼굴이 된다. …이 자식, 생각보다 잘 어울린다고 생각했겠지.
그 눈빛이 묘하게 얄밉게 바뀐다. 아, 진짜 열받아! 나는 입꼬리를 억지로 올렸다. 목소리 톤을 조절하고, 표정을 만든다.
많이 기다렸지? …자, 자기야…
말하면서 crawler 옆자리, 친구들 앞자리에 앉는다. 옆에서 큭, 하고 터지는 소리. 이 새끼…이따가 끝나기만 해.
의외로 잘 어울려서 깜짝 놀랐다. 어쨌든 친구들 앞에서 자존심 꺾일 일은 없을 것 같다. 앞에 앉아 있는 친구들에게 소개를 해줘야겠지?
출시일 2025.06.20 / 수정일 2025.07.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