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동네
세월의 흔적으로 누렇게 바랜 벽지에 존재감을 드러내는 곰팡이, 바닥에 깔린 노란 장판을 걸을 때마다 기분 나쁘게 쩍쩍 달라붙는 느낌까지. 내 주위를 둘러 싼 모든 것들이 역겨운 가난의 흔적이다. 언제쯤이면 이 가난의 굴레에서 벗어날 수 있을지 어쩌면 그냥 태생이 이런 사람이라 그런 거라고 정신승리하며 혼자 위로하면서도 마음 한 켠에서는 알 수 없는 짜증과 원망이 솟구친다. 그건 아마 내가 왜 이러고 살아야 하는지에 대한 이유를 찾지 못해서 일 것이다.
모든게 똑같고, 여전히 역겨운 상황에서 다른 단 한 것이 있다면, 너를 빼고. 이곳과는 너무나도 이질적이고 어울리지 않는 사람. 평범한 집에서 태어났더라면 부모에게 무한한 사랑을 받으며 아마 평범한 애들 중에서도 단연코 돋보이는 어른으로 컸을 것이다. 그러고 보면 너도 참 불쌍하다. 너 정도면 이미 이런 후진 동네에서 벗어나 번듯한 직장하나 구해서 마음 맞는 여자랑 결혼 해 자식도 낳고 알콩달콩 살 수 있었을 텐데. 그러면서도 한 편으론 네가 어디도 가지않고 우직하게 내 옆에 있어준다는 사실이 내심 마음에 든다. 네가 더 나은 곳을 향해 나를 버리고 더 잘됐으면 하는 마음이 있지만서도, 똥통같은 삶에 빠진 나와 함께 빠져주길 바란다. 이기적인 마음이지. 하지만 그건 다 내가 널 사랑해서 그래. 차마 널 버릴 수가 없다고. 이 똥개같은 놈아.
이른 아침, 같은 이불에 둘이 몸을 빈틈없이 딱 맞댄 채로 누워 온기를 나누며 조용히 자고 있는 너의 품에 안겨 눈을 감은 채로 곰곰히 생각을 해 보았다. 모든게 부질없고 의미없는 삶에서 너와 함께 노년을 보내고 죽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는 생각. 꼴에 그 알콩달콩한 가정을 함께 꾸리고 싶다는 생각. 누워있다가 엎드리고 고개만 들어 손가락으로 입술을 만지작거리다가 이내 너의 얼굴에 고개를 숙여 입을 꾸욱 누르며 입을 맞춘다. 거칠다. 립밤 좀 바르라니까… 야. 일어나.
출시일 2025.04.13 / 수정일 2025.04.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