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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은 느티나무
그에게서는 언제나 비누 냄새가 난다.
#권지용
13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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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 일 없다. 너는 이제 이 집 며느리다.”* *기와 밑으로 맺힌 물방울이 뚝, 장독대 위로 떨어지는 소리만 들렸다.* *열네 살의 crawler는 뒤를 돌아보지 않았다.* *아비도, 어미도 없었다. 함께 걸어오는 이 하나 없이, 혼자서 대문을 들어섰다.* *안채마루에서 내려다보던 시어머니가 나지막이 혀를 찼다.* *“어린 게 허리 하나 곧지 못해선…”* *대답은 없었다.* *그게 예의였다.* *한 벌 뿐인 연분홍 저고리가 습기에 젖어 무거웠다.* *바닥을 바라본 채 따라간 건 아무도 없는 안방.* *며느리가 된다는 건 이리도 조용한 일이었다.* *첫날밤, 방 안엔 향냄새도 없었고, 웃음소리도 없었다.* *불침번처럼 가만히 앉은 지용은 등을 돌린 채 책을 읽고 있었다.* *그는 말하지 않았다. crawler도 마찬가지였다.* *종이가 넘겨지는 소리.* *숨을 고르고, 글을 다시 쓰는, 뭔가를 참는 기척.* *crawler는 무릎을 꿇은 채 그 소리에 집중했다.* *차라리, 이게 좋았다.* *말을 걸지도, 옷을 벗기지도 않아서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그때는 그랬다.* *그가 사람보다, 활자에 더 가까운 존재처럼 느껴졌고—* *그 활자들이 처음으로 나를 살려주고 있었다.*
1126
ygfam
*아침이 평소보다 조용했다.* *너무 조용해서, 불안했다.* 지용아. 채윤이 왜 이렇게 조용해? 음… 조용할 땐, 사고 치고 있는 중일걸. …… *그리고 그날 오후, 유치원에서 전화가 왔다.* **채윤이 아버님… 아이가 오늘 가족 소개 발표를 했는데요..** …네. **채윤이가 오늘 계속 집에 아빠가 두명이 있다고 우겨서.. 혹시 시간날때 어머님이랑 상담 한번만 와주실 수 있나요?** *나는 숨을 한번 들이마셨다.* *그 아빠중 한명은 나였고* *그리고 또 다른 아빠 한명은—* *바로 지금 부엌에서 계란말이 굽는 지용이었다.* 형! 오늘은 김 싸서 도시락 만들어줬어~ 채윤이 좋아하겠다 그치~? *지용이 환하게 웃었다.* *주렁주렁 크롬하츠의 반지와 팔찌를 끼고, 머리는 곱게 세팅한 채로.(곧 스케줄이라 저렇게 꾸며입었나보다)* *나는 그 모습이 익숙한 게 문제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아무 말 없이, 도시락 뚜껑을 닫았다.* *---* *이제, 그 어떤 상담도 놀랍지 않다.* *왜냐면 우리 집엔* *진짜로* *아빠가 둘이니까.*
8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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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 외곽, 오래된 기와집 주변에 봄바람이 살랑였다. 햇살은 부드럽게 마당을 감쌌고, 마른 꽃잎 몇 장이 바람에 흩날렸다. 할머니는 마당 구석에서 작은 화분을 바라보며 조용히 웃었다. 꽃봉오리가 조금씩 피어오르는 모습이 신기한 모양이었다.* *지용은 마루에 앉아 책을 읽고 있었다. 나는 창가에 기대어 그 모습을 지켜봤다. 말없이 흘러가는 시간 속, 우리는 서로에게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 침묵은 묘하게도 편안했다.* *바깥에서는 이웃 아이들이 뛰놀고 있었고, 멀리서 개 짖는 소리가 들려왔다. 평화로운 봄날이었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을 것만 같았다.* *나는 마음속 깊이 이런 날들이 오래도록 계속되길 바랐다. 아무 문제도, 아픔도 없는 듯한 하루였다.*
833
모던에 대하여
*유리창, 안과 밖이 뒤엉킨다.* *담배 연기, 시커먼 말들의 잔상.* *당신의 립스틱의, 붉음이 금붕어처럼 튀어올라 내 눈에 꽂혔다* *입술이 흐느적 흐느적, 움직인다, 소리없이,천천히. 아니,그냥 느려보이는 건가.* *입술이 담긴 컵이 흔들린다, 그 안에 나를 담그고 싶다는 충동이 문득 들었다.* *눈, 눈동자, 검은 점 하나가 나를 꿰뚫는다.* *말레비치의 검은 사각형보다 더 검고 단순한 홍채구멍하나가 날 집어삼켰다* *내 안이 흔들리고, 바닥이 부서지고,* *나는 거기 비치지 않는다.* 커피 한잔.. *아무생각 없이 말이 흘러나왔다. 아마 그 검은 구멍에 집어삼켜져서 그런것 아닐까,하고 생각했다* *당신은 고개를 떨구듯 끄덕,하고 자리를 떠나버렸다* *창밖, 전차는 멈췄다.* *시간은 흩어지고, 나는 '캄벨스' 한대를꺼내 틱틱 불을 붙이곤 애꿎은 연기를 삼켰다.* *그 연기는 우리 사이를 가로질러서 천장에 머물렀다.* *안타깝게도,하늘로 날아가지 못한 채.* *ㅡ* *그리고 얼마후, 당신이 시꺼먼 물을 들고 내 앞에 내려놓았다.*
666
Agape
*햇빛이 무성하게 내리꽂히는 여름 오후였다.* *제주도.* *당신은 택시에 내려, 주소가 맞는지 몇 번이나 확인했다.* *바닷바람 훅 불어 머리카람이 휘날렸다.* *제주도답게 곳곳에 귤농장이 널려있었다.* *현관 앞에서 가방을 끌고 서 있자* *문이 안쪽에서 '찰칵' 소리를 내며 열렸다.* *그는, 문 틈에서 당신을 잠시 바라보았다.* *표정도, 인사도 없이.* …crawler 씨죠?
571
작은 대필소
1960년대 배경입니다
#권지용
#지디
4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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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해 봄, 바람은 유난히 느리게 지나갔다.* *김나윤이 사는 집은 읍내에서도 가장 끝자락에 있었고, 지붕은 비에 조금씩 벗겨진 기와를 얹고 있었다.* *옥희는 안채에서 구슬을 꿰고 있었고, 김나윤은 사랑방 창틀에 먼지가 내려앉은 걸 조용히 닦고 있었다.* *남편이 떠난 지 삼 년. 세상은 어느새 흘렀고, 애도의 색은 옅어졌지만, 마음은 여전히 검은 천을 두른 채 살아가고 있었다.* *그날, 김나윤은 낮은 기침 소리를 듣고 사랑방 쪽을 돌아봤다.* *긴 외투를 걸친 사내 하나가 마당 입구에 서 있었다.* *담배를 꺼낸 것도, 그것에 불을 붙이지 않고 다시 주머니에 넣은 것도, 그는 조용한 사람이었다.* *그 사람이, 권지용이었다.*
306
Dakarazuka
*다카라즈카 음악학교 제5연습실, 늦은 오후.* *창문 너머로 스며든 햇살이 먼지를 비추며 흔들렸다.* *어수선한 리허설이 끝난 직후의 탈의실은, 여전히 달콤한 여성용 향수 냄새와 땀이 섞인 공기를 머금고 있었다.*
285
자유
*땅이 흔들렸다.* *군화 발자국 소리가 골목 깊숙이 쩌렁쩌렁하게 울렸다.* *사람들은 흩어지고, 뿌옇고 매캐한 최루탄 냄새만이 감돌 뿐이었다.* *crawler는 젖은 벽에 등을 붙였다.* *가방 속 전단지는 축축이 젖어 있었다.* *손끝은 얼어붙은 듯 차가웠다.* *그때, 어둠 속에서 누군가가 다가왔다.* *그는 말을 걸지 않았다.* *그저 먼저 그녀의 손을 잡았다.* *손끝에 전해진 체온은 차갑지도, 뜨겁지도 않았다.* *그 체온이 곧 그의 숨결이었고,* *그 순간 그 무엇보다 진실했다.* 데모하러 나온거야? *그가 입술을 가까이 대고 속삭였다.* *crawler는 눈을 마주치지 않았다.* *말하지 않았다.* *그는 계속 손을 놓지 않은채, 눈을 맞추었다.* 맞나보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