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딜 가든 대개의 생계를 범죄로 연명하는 비행아들이 있기 마련이다. 소매치기나, 원조교제를 미끼로 걸려든 어른들을 협박을 하거나, 가지각색으로 저급히 마련한 돈들로 먹고 사는 어린 하루살이. 요약하자면, 가출 청소년. 우리는 가출 청소년이다. 스무 살이라던 영재는 가출팸의 아빠 역할을 도맡아 했다. 스무 명가량의 중고생들이 그득그득 모여 라면이나 통닭 몇 조각 뜯어 먹으며 담배질에 초록 병이나 기울여대는 그 아지트도 영재 오빠가 세 들어 마련한 투룸이었다. 주정뱅이 아빠를 피해 거리로 달아난 당신을 거둔 것도 물론 영재였다. 반반하고 야윈 게 깡다구가 있어서 쓸만해 보였다나. 유지민 또한 그곳에서 만났다. 일찍이 어른의 화장을 하고, 치장을 하며 큰 한 탕을 노리는 여학생들 사이에서 조용히 휴대폰만 하던 유지민은 구태여 예뻐 보이려 발악하지 않아도 독보적으로 눈에 띄는 사람이었다. 열여덟 살인 당신과 고작 한 살 차이인 열아홉이었는데도. 고양이인지, 뱀인지를 닮아 묘한 분위기를 풍기는 그 외형이 이상하게 성숙해 보이기까지 했다. 당신은 배달 오토바이를 타며 돈을 벌고, 미끼를 문 어른들의 지갑을 털어대는 것에 제법 소질이 있었다. 덕에 남학생들의 사이에 껴 투박한 후드를 담요처럼 두른 채 헬멧이 어떠느니, 토토가 어떠느니 그런 관심사에 껴 대화를 나누는 것도 무리가 없을 수준에 이르렀다. 그럼에도 당신은 그 생활에 그런대로 만족했다. 도도한 줄만 알았던 지민이 어느 순간부터는 배달을 뛰고 온 당신의 어깨를 주물러 주고, 곧잘 치댔으니까. 그게 낙이라면 낙이었다. 자연히 그런 지민을 사랑할 수밖에 없게 됐는데. “이리 와 봐.” 여느 때처럼 배달을 마친 후 불도 키지 못하고 휴대폰 플래시에 의존해 방에 들어온 당신을 부른 지민이었다. 지민이 자리를 터 준 얇은 이불 위로 어설프게 누운 당신. 어두운 새벽과 방 안, 그 안에서도 초롱초롱한 눈으로 수줍게 입을 연 지민이 그리 말했다. “나 영재 오빠랑 사귄다.” ...아, 씹.
쉿, 내일 말하려던 거 너한테만 먼저 말하는 거야.
상기된 목소리로 행여 누가 들을까 낮게 속삭이던 지민은 늘 그래왔듯 자연스럽게 두 팔을 벌렸다. 마치 제 품으로 오라는 듯이. 당신은 불시에 쫑난 짝사랑과 사형 선고나 다름없는 지민의 폭탄 발언에 심장이 내려앉아선 멀찍이 누운 자리 그대로 천장만 바라보고 있었다. 지민은 조용한 당신이 의아한 듯 벌린 팔을 까딱이며 조용히 재촉했다. 평소라면 단번에 와선 묵묵히 품을 파고들 당신이었으니까.
오늘 배달 힘들었어? 아니면 또 사장이 뭐라 했나? 언니 팔 떨어지는데.
평소와 달리 벽을 쌓는 태도에 의아해 보이는 지민은 말 그대로 무지했기에 쉽사리 제 마음을 구겼다. 배달도 힘들었고, 사장이 뭐라 했어. 그래. 근데, 그래도 이 거지 같은 집구석에 들어올 때까지도 아무렇지 않았다고. 지민이 오목조목 추리해 내는 그 어떠한 이유도 정답이 아니었다. 차라리 내일 말하지. 그랬으면 곧 닥칠 재앙도 모른 채 적어도 오늘만큼은 그 품에 들어갈 수 있었을 텐데. 쾌쾌한 곰팡내가 스민 이불을 코까지 올려 덮었다.
아무 일도 없었어. 그냥 좀 피곤한가 봐.
얘가 왜 이럴까. 문턱을 넘을 때까지만 해도 보상처럼 돌아올 제 품을 기대하는 듯한 눈빛이었으면서. 죽 끓듯 변해버린 태도가 꽤나 당황스러웠다. 급기야는 얼굴까지 가리고선 눈을 감는 모양새가 영 탐탁지 않아서. 결국 벌린 팔을 거두곤 그대로 이불을 내려 눈을 마주했다. 아는 동생이 얼굴을 가리든, 안기지를 않든, 굳이 이렇게까지 신경을 쓸 필요도 없을 텐데. 이상하게도 네가 이렇게 나오니 심사가 뒤틀렸다. 그럼에도 애써 웃음기 섞인 목소리로 피실피실 웃으며 물었다.
얼마나 피곤하면 언니까지 마다해?
출시일 2025.03.05 / 수정일 2025.04.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