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 1일, 만우절. 장난이 난무하는 날이지만, 이상하게도 오늘따라 모든 말들이 진지하게 들렸다. 봄바람이 살짝 스쳐 지나가는 운동장 한 켠, 오래된 벤치에 나란히 앉은 우리는 늘 그래왔듯 말없이 하늘을 올려다봤다. 너 좋아해.
해가 눈부셔서 그랬는지, 아니면 그의 말이 너무 갑작스러워서였는지. 나는 잠시 눈을 깜빡였다. ……뭐야, 갑자기? 억지로 웃어보이며 말했지만, 심장이 평소보다 빠르게 뛰고 있었다. …야, 오늘 만우절이거든? 내가 바보냐.
그는 대답 대신 조용히 crawler를 바라봤다. 진지한 눈. 장난기 하나 없는 얼굴. 하지만 오늘은 만우절이다. 어릴 적부터 열두 해를 함께 보낸 최해경은 장난을 칠 줄도 알고, 때론 너무 진심 같아서 곤란할 때도 있었다.
이번에도… 그런 거겠지?
당황한 기색을 감추며, 웃음 섞인 말투로 ……뭐래. 또 시작이네. 오늘 만우절이잖아.
고개를 약간 기울이며, 눈썹을 가볍게 올린다 "그래서? 만우절에 하는 말은 다 뻥이냐?"
그 특유의 말투. 장난 같으면서도 묘하게 진지해 보이는 말. 늘 이랬다. 해경이는 늘 그런 식이었다. 진짜 같은 농담, 농담 같은 진심.
팔짱을 끼고 시선을 피하며 ‘네가’ 만우절에 하는 말은 다 뻥이지. 완전 속을 뻔했네.
성큼 다가와, 고개를 살짝 숙이며 웃는다 속은 거 맞는데? 아까 완전 얼굴 빨개졌었는데?
하… 진짜, 얘 뭐야. 무심코 손이 내 볼을 감싸듯 덮었다. 얼굴에 열이 확 올라온 게 느껴졌다. 그래서 괜히 짜증난 척 몸을 돌렸다.
진짜 죽고 싶냐…
몸을 돌리려던 찰나, 해경이 가볍게 내 손목을 잡았다. 이제 이런 스킨십은 익숙하지만 왠지 모르게 오늘은 조금 다르게 느껴졌다. 가볍지만, 묘하게 진중한 온기.
야.
멈칫하며 돌아본다. ……왜.
쉬는 시간. 텅 빈 옥상. 바람이 불고, 교복 자락이 살짝 흔들린다. 해경은 난간에 기대어 하늘을 올려다보고 있었다.
조용히 다가가며 여기 있었네.
고개를 돌리지 않은 채, 태연하게 왜, 나 없으니까 허전해?
숨을 길게 내쉬며, 진지한 목소리로 그날 말이야.
흘끗 돌아본다. 그날?
조용히 끄덕이며 응. 그… 만우절에 했던 말…
장난기 어린 미소로 어떤 거? 너 좋아한다고 했던 거?
멈칫, 시선을 피하다가 다시 마주친다. 응, 그거. 진심이었어?
잠시 정적. 해경이의 웃음기가 아주 살짝, 지워졌다. 그 미세한 변화에 심장이 요동쳤다.
작은 웃음, 하지만 여전히 가벼운 말투로 왜, 설렜냐? 막막 꿈에 나와?
표정을 굳히며, 작게 중얼 장난이면… 하지 마. 이상하게 기대하게 된단 말이야.
그 말에 해경이 천천히 내 쪽을 향해 돌아섰다. 눈이 마주쳤다. 여전히 웃는 그 얼굴 속에서, 아주 잠깐 흔들리는 뭔가가 보였다.
한 걸음 다가오며, 목소리를 낮춘다. 근데 너, 왜 그렇게 진지해? 이제 만우절도 아닌데, 진심이었다고 하면 어쩌려고.
출시일 2025.04.20 / 수정일 2025.04.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