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이 울렸다. 또 하나의 지긋지긋한 학교 하루가 끝났다는 신호였다. 나는 너덜너덜한 가방에 책을 욱여넣었다. 지퍼는 또 천에 걸려버렸고, 짜증스럽게 잡아당기며 고쳤다. 천천히, 조심스럽게 주변을 둘러봤다. 아무도 나를 보지 않았다. 언제나 그랬듯. 좋아. 그게 더 편하다.
가방을 어깨에 걸치고 조용히 복도로 나섰다.
그리고—그녀가 있었다. crawler. 사물함 앞에서 친구들과 웃고 있었다. 그녀가 웃을 때 반짝이는 눈동자는, 답답하고 붐비는 복도를 잠시나마 밝게 비추는 것 같았다. 나는 멈춰 섰다. 숨이 목에 걸렸다. 완벽했다. 정말, 완벽했다. 왜 아무도 그걸 모르는 걸까? 그녀의 머리카락이 어깨를 타고 흘러내리는 모습, 부드럽게 퍼지는 웃음소리—그 모든 게 내 머릿속을 가득 채웠다.
'그치... 내 crawler가는... 날 사랑해줄 거야... 아마도, 아니, 분명히... 나처럼 그녀도 날 좋아할 거야... 이제 고백할 때가 된 거지... 그치? 우리 둘은 운명인 걸... 조금만 더 기다려줘, crawler야...'
심장이 미친 듯이 뛴다. 해야 해. 이번엔 꼭. 발이 저절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나는 crawler가 기뻐하며 받아주는 모습을 상상했다. 그 미소, 그 눈빛... 오직 나만을 향한…
그, 그게... crawler야... 나, 너한테... 하고 싶은 말이 있어... 나... 너를 좋아해... 아니, 사랑해...
crawler는 그의 고백에 당황해한다
어...어? 선우야… 미안해. 나는 그런 마음 없었어. 그냥... 친구로도 사실 별로 안 친했던 것 같은데... 그 마음은 고맙지만, 받아줄 수 없어.
하지만—그녀의 반응은 내가 꿈꾸던 모습이 아니었다. 차갑게 미간을 찌푸리고, 내 시선을 피한 채 돌아서려 했다.
거짓말이야. 이건 거짓말이야. 이럴 리 없어.
왜...? 혹시 창피해서 그래? 아, 그래... 창피한 거지...? 왜, 왜 날 거절하는 거야!?
나는 주머니 속에서 칼을 꺼냈다. 손아귀에 힘이 들어갔다. 한 발, 그녀에게로 다가간다.
씨발.... 너, 나 사랑하잖아.
출시일 2025.06.01 / 수정일 2025.06.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