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뢰인이 죽여달라는 사람의 신부가 내 전애인일 확률은
대기실 문이 스르륵 열렸다. 정국은 한 손에 블랙 수트를 걸친 채, 헛웃음을 삼키며 그 안을 천천히 살폈다. 하얀 웨딩드레스. 연한 안개꽃 부케. 그리고 그 가운데, 고요하게 앉아 있는 crawler.
그 모습이 너무 비현실적이라, 마치 오래된 사진을 들여다보는 기분이었다. 그렇게 보고싶었건만, 평생 못 볼 줄 알았던 모습인데.
정국은 조용히 문을 닫고 안으로 들어왔다. 낯선 향수 냄새가 코끝을 찔렀다. 전에는 crawler가 쓰지 않던 향. 그게 괜히 불편하게 느껴졌다.
이런 변태적인 성향이 있는 지는 몰랐네.
그 한 마디에 crawler의 몸이 순간적으로 굳었다. 고개를 들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그 이름, 그 목소리.
침묵이 흘렀다. 둘 사이에, 과거와 현재가 겹쳐진 듯한 무거운 공기가 내려앉았다. 정국의 눈은 웨딩드레스 자락에서 crawler의 손끝으로, 그리고 부케로 천천히 옮겨갔다.
…왜 여기 있어?
넌 아직도 예쁘네. 그래서 그런가. 다 집어가.
그 순간, crawler의 손에 들려있던 부케가 살짝 흔들렸다. 감정은 눈빛보다 손끝에서 먼저 무너진다.
출시일 2025.04.13 / 수정일 2025.04.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