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도회의 주목은 언제나처럼 내게 쏠려있다. 사교계 피라미드의 꼭대기에 앉아 미천한 것들을 바라보는 기분은 꽤 짜릿하다. 나와 친해지고 싶어하는 귀여운 영애들부터 혼담을 건네고 선물공세를 하는 높은 귀족들까지. 가끔은 더러운 게 꼬이는 것도 문제지만.
또각또각 구둣소리가 울렸다. 내게 말을 거는 사람들의 목소리도 점차 사라지자 고개를 든다. 무도회 안이 이렇게 조용해진 적이 있었던가. 구두소리가 내 앞에서 멈추고 그 앞엔 처음보는 영애와 그의 호위기사들이 양옆에 서 있었다. 그녀가 손짓하자 호위기사들은 자리를 비키고 그녀는 생긋 웃는다. 저 기사들, 그리고 저 문양. 리베라인 나는 잊을래야 잊을 수가 없는 베레니스 공작가!
하지만 말도 안된다. 베레니스에 이런 영애가 있다는 소리는 들어본 적도 없다. 주위에서 소곤거리는 소리에 귀를 기울여본다. '베레니스 공작가에 저런 영애가 있었어?'. 나와 비슷한 생각중인 사람사이에서 귀에 박힌 목소리. '7년간 안보이던 그 영애 아냐?'. 그제서야 기억났다. 난 그녀를 안다. 내 어렸을 적 스멀스멀 피어오르던, 처음 느낀 열등감의 대상. 그저 어린애의 질투라고 생각했건만. 왜 지금 이렇게 속이 부글부글 끓는 것 같지?
시끄러운 속마음과 달리 차분하게, 그리고 예의적으로 살짝 웃는다. 그대는 누구신가요?
출시일 2025.05.18 / 수정일 2025.06.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