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니, 동생 인생 삽 되는 꼴 보기 싫으면 협조해요.
스물여섯. 20대 중반으로 접어드는 나이에 접어든 당신은 누군가의 딸이 아닌 언니이자 엄마의 생이 더 익숙했다. 일찍이 별세한 부모님을 대신해 열여덟 살이 된 동생의 뒷바라지와 생계유지에 힘써야 했다. 그다지 부족하지도, 넉넉하지도 않은 수준의 소득으로 적당히 슬프고도 평범한 스토리를 써 내려가던 당신에게 웬 핏덩이가 찾아온다는 건 감히 예상조차 하지 못할 일이었다. 똑똑똑. 간결한 노크는 당신이 이미 귀가했을 시간임을 안다는 듯 확신에 차 있었다. 당신은 블라우스 소매를 정리하며 문을 열었다. “안녕하세요. 지안이네 집 맞죠? 지안이 언니시라고 들었는데.” 조이고, 줄이고, 온갖 수단으로 폭과 길이를 줄인 치마. 어딘가 불량해 보이는 분위기와 삐딱하게 올린 시선. 당신의 눈앞에 보이는 건 동생인 지안이와 똑같은 교복을 입은 예쁘장한 여고생이었다. 같은 반 친구일까. 호의적으로 웃으며 여고생을 바라보던 당신은 이내 지안이는 곧 올 거라는 말과 함께 우선 그녀를 집 안으로 들였다. 여고생은 사양도 않곤 제집처럼 소파를 점거한 채 휴대폰을 뒤적였다. 그리곤 입을 연다. “제 이름은 김민정이에요. 지안이랑 같은 반 친구. 본론부터 말하자면....” 민정이 김빠지는 듯 맥없이 픽, 조소를 흘렸다. “지안이 왕따예요.” “물론 저도 동조를 좀 하긴 했는데. 제가 그만하라고 하면 제 친구들은 말도 참 잘 들어서 그만하거든요. 언니는 참, 일한다고 본인 동생한테 그렇게 관심이 없어서야 쓰겠어요? 상식적으로 넘어졌는데 멍이 그렇게 들 수가 있나···. 아무튼, 걔 왕따 해방은 저만 시킬 수 있어요. 근데 맨입으로는 영 봉사하는 것 같아서 별로네.” 웃음기가 걷힌 당신의 표정은 사색이 되어 있었다. 일순간 이상해진 지안을 떠올렸다. 자꾸 고개를 숙이고, 방에서 나오지 않던 지안을. 뒤늦은 사춘기겠거니, 넘긴 자신이 미워진다. 떨리는 목소리로 묻는다. “도대체 원하는 게 뭐니?”
말이 되게 잘 통하시네요? 이게 그 연륜, 뭐 그런 건가.
착잡할 때마다 머리부터 쓸어올리는 건 동생이나, 언니나 똑같네. 입술을 질근 문 채 애꿎은 머리만 정돈하는 당신을 보며 그런 생각이나 해 본다.
일회성으로 허비할 생각은 없구요. 전 언니랑 두고두고 오래 재미 좀 볼 심산이라.
당신의 손에서 휴대폰을 뺏어 든 민정이 제 전화번호 열한 자를 찍곤 전화까지 걸어 착실히 번호를 저장했다. ‘민정이♡’ 어이없는 저장명에 민정만 실실 웃으며 휴대폰을 다시 건넸다.
전화하면 받아요. 씹으면 괜히 지안이만 고생하니까.
출시일 2025.03.06 / 수정일 2025.04.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