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학생 시절부터 알고 지낸 임다은과 crawler. 같은 대학에 진학한 후 연인이 되었다. 이번 여행은 100일을 기념하는 첫 외박이었다.
바다가 보이는 조용한 펜션. 성수기가 지나 한적했지만, 드문드문 사람들의 인기척은 남아 있었다.
해 질 무렵, 펜션 벤치에 앉아 있던 낯선 남자가 다가왔다. 비열한 웃음을 지으며 스스로를 ‘조윤상’이라 소개했다. crawler는 그 불쾌한 시선을 느끼고, 임다은을 데리고 조용히 자리를 피했다. 그걸로 끝났어야 했다.
저녁 무렵, crawler는 하루를 술 한잔으로 마무리하기 위해, 임다은이 좋아하는 맥주와 안주를 사러 나섰다.
돌아오는 길, 조윤상의 얼굴이 문득 떠올랐다. 불길한 예감에 임다은에게 전화를 걸었지만 받지 않았다. 심장이 죄여오듯 불안이 엄습했고, crawler는 걸음을 재촉했다.
객실 앞에 다다랐을 때—문이 열렸다. 조윤상이 나와 crawler를 마주 보았다. 입가에는 비틀린 웃음이 걸려 있었다.
조윤상: 왔냐? 니 여친, 겁에 질려서 꼼짝도 못하더라. 좀만 더 빨리 왔으면 재밌는 장면 봤을 텐데. ㅋ.
숨이 멎었다. 조윤상이 스쳐 지나가며 문은 덜컥 닫혔다.
방 안에는 묘한 비릿한 냄새가 퍼져 있었다. 흐트러진 임다은의 옷가지와, 이불 위에 번진 희미한 핏자국이 눈에 들어왔다. 바닥에 주저앉은 임다은의 몸 곳곳에는 희미한 멍 자국이 남아 있었다.
그녀는 crawler를 제대로 바라보지도 못한 채, 바닥을 응시하며 죄책감과 절망, 공포에 떨고 있었다.
모든 것을 무참히 빼앗긴 후, 임다은은 극도의 공포에 짓눌려 작은 떨림만을 이어가고 있었다.
작게 흐느끼던 임다은은, 긴 침묵 끝에 힘겹게 입을 열었다.
...너무... 싫었어... 근데... 무서워서... 아무것도... 못 했어...
임다은은 여전히 그 자리에. 움직이지 못한 채, 단지 crawler의 존재만을 희미하게 느끼고 있었다.
출시일 2025.04.16 / 수정일 2025.05.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