ㅤ ㅤ반쯤 감긴 눈을 깜빡였다. 이렇게 많이 마실 생각은 없었는데. 아무 생각 없이 마셨더니 주량을 훌쩍 넘겨버렸다. 사실 제 주량을 잘 몰랐다. 취할 때까지 마신 적이 없기도 했고, 그렇게 마시고 싶지도 않았다.

ㅤMT에서 얼굴을 잘 보이지 않던 시우가 갑작스레 술 약속을 잡게 된 것에는 다 이유가 있었다. 최근에 시작한 프로젝트가 잘 풀리지 않은 것도 있고, 감정적으로든, 육체적으로든 너무 지쳐버린 것도 있었다.

ㅤ영감이 잘 떠오르지 않았다. 항시 초조하기만 하고 이거다 싶은 게 딱히 없었다. 하필이면 이 상황에 좋아하는 사람마저 생겨버린 탓에 제 구질구질한 마음만 떠벌리는 가사만이 종이에 나뒹굴었다. 창작의 고통을 제대로 느껴버린 시우는 온전히 제정신으로 있을 수가 없었다.

ㅤ슬럼프였다.

---

ㅤ제 마음을 가사로 적는 건 생각 외로 어려운 일이었다. 있는 그대로를 표현한다면 그건 더 이상 가사가 아닌, 자신의 혼잣말이 되어버리는 꼴이 된다. 그러니까··· 자신은 종이에 줄곧 혼잣말로 낙서하고 있었다는 것밖에 되지 않는다.

ㅤ

ㅤ우울감에 빠져 테이블에 머리를 박고 있던 시우에게 누군가 말을 걸었다.

ㅤ"··· 은시우."

ㅤ익숙한 목소리에 시우는 고개를 들었다. 눈앞이 흐려 제 바로 앞에 있는 상대가 잘 보이지 않았지만, 어느 정도 유추는 할 수 있었다. 도하··· 같은데. 얘가 왜 여기 있지. 지금 꿈꾸고 있는 건 아닐 테고.

ㅤ도하야아~······?

ㅤ도하가 시우의 손목을 잡고는 말했다. "집 가자." 아, 데리러 온 거구나. 내심 기뻐 도하를 보고 헤벌레 웃었다. 자신이 잘생긴 건 모르겠지만, 도하가 제 얼굴을 좋아한다는 사실은 알고 있어 종종 미인계를 써먹었다. 역시나 이번에도 통했다.

ㅤ밤공기는 적당히 선선해 시원했다. 낮에는 엄청 더웠는데···. 말없이 주변만 보며 걷던 도하가 입을 열었다.

ㅤ"무슨 일 있었어? 갑자기 술을 다 마시고···."

ㅤ어디서부터 말해야 할지 막막했다. 일단 좋아하는 사람은··· 얘기 안 하는 게 맞겠지.

ㅤ프로젝트가 잘 안 풀려서 그래. 신경 안 써도 돼.

ㅤ저렇게 말해도 신경 쓰겠지. 제 짝사랑을 앞에 두고 이것저것 다 털어놓기엔··· 왠지 모를 거부감이 들었다.

ㅤ시우는 자신이 도하를 좋아한다는 사실을 최근에서야 알았다. 쓰는 곡마다 도하가 있었고, 멜로디들은 온전히 도하의 것이었다. 이런 곡을 어떻게 도하한테 들려줘. 또 그렇다고 정식으로 사이트에 음원을 올리고 싶진 않았다.

ㅤ"너 좀 이상해. 요즈음 기운도 없고, 계속 멍때리고."

ㅤ··· 잠깐만 앉을까?

ㅤ주변에 있던 벤치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주머니 속에서 엉켜있던 이어폰을 꺼내 도하에게 한 쪽을 건넸다. 휴대폰에 연결하니 잔잔한 인디 노래가 흘러나왔다.

ㅤ사실 작업이 잘 안 풀려서 조금 힘들어. 영감이 잘 안 떠오르기도 하고.

ㅤ시우는 잠시 망설이다 말을 뱉었다.

ㅤ그러니··· 네가 나의 뮤즈가 되어줘, 도하야. 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