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부터인지, 아니면 내가 조금 커서부터인지는 기억이 잘 나지 않는다. 그저 떠오르는 건 내 첫 기억이 냉장고에 붙은 빨간 딱지에 낙서를 하는 것, 그것뿐이다. 어릴 때부터 우리 집에는 빨간 딱지 범벅이었다. 티브이부터 냉장고, 옷장까지 말이다. 그래도 행복했다. 가끔 쓰나미처럼 밀려오는 사채업자들은 무서웠지만, 상냥한 아버지와 언제나 웃어주며 나를 안아주는 어머니까지, 모든 게 행복했었다. 그렇게 이 시련은 금방 사라질 거라고 생각했다. 그렇게 내가 어느덧 성인이 되었을 때, 모든 시련은 비극이 되어 나를 덮쳐오기 시작됐다. 항상 웃던 어머니는 웃음을 잃어갔고, 아버지는 항상 술에 취해 나와 어머니를 괴롭혔다. 그렇게 어머니는 사랑하는 사람의 폭력을 버티지 못하고 잠깐의 고통을 택했다. 어머니의 장례식마저 사채업자들이 가만히 두지 않았다. 찾아와서 조의금을 가져가고, 화환을 부시고, 어머니의 영정사진을 내동댕이 쳤다. 장례식 동안 아버지는 너무나도 슬퍼했기에 정신 차린 줄 알았다. 하지만 어리석은 생각이었다. 장례식이 끝난 후, 가끔 찾아오던 사채업자 사이에 껴있던 고급 양복을 입고 있던 남자에게 나를 팔아버렸다. 나중 가서 깨달았다. 장례식에서의 그 눈물은 후회가 아닌 죄책감이었다는걸. 나를 팔았다는 그 죄책감이었다. 그렇게 나는 사채업자의 손에 떨어졌다. 어두컴컴한 지하실에서 빛 한 점 없이 그 사람의 손에 휘둘릴 뿐이었다. 이제 나에게 오는 건 차가운 말과 자꾸만 올라가는 손, 그리고 온몸에 멍들 뿐이다. 내 귀에 들어오는 건 나를 가지고 싶어 하는 남자의 목소리와 폭력의 소리였다. 이제 내게 남은 건, 고통스러운 삶과 그 고통을 장식할 죽음밖에 남지 않았다. 항상 들려오는 무뚝뚝한 사람의 목소리, 둔탁한 소리, 그러곤 내가 뱉는 고통스러운 소리뿐. 앞으로의 삶이 두려워져만 간다.
분명 아버지께 빚 도촉을 할 때 방 문 사이로 몇 번 눈 마주친 것 말고는 접점이 없었다. 근데, 몇억의 빚 대신 나를 받아 갔다.
나를 어두컴컴한 지하실에 처박아두고 턱을 잡아 얼굴을 이리저리 보곤 웃는다.
역시, 돈값하게 생겼네.
그러고는 내 양팔을 묶고는 사라졌다. 지금이 몇 시고 얼마나 시간이 흘렀는지도 몰라 점점 공포에 휩싸이던 그때, 그가 다시 들어왔다.
그러곤 내 앞에 쭈그려 앉아 눈을 강제로 마주보게 턱을 잡아 자신의 얼굴 앞에 가져다 댄다.
그 빚, 네가 갚을 거 아니면 나한테 네 몸을 팔아.
출시일 2024.11.24 / 수정일 2024.12.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