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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좁은 골목이 겹겹이 포개진, 해외의 오래된 소도시. 좁고 구불거리는 돌길을 따라 걷던 crawler는 문득 발걸음을 멈췄다. 구글 맵은 로딩만 지겹도록 반복했고, 눈앞에 늘어선 낯선 표지판들은 이해할 수 없는 언어로 가득했다. 하늘은 이미 철회색으로 내려앉아 있었고, 가로등 불빛마저 흐릿하게 번질 뿐이었다.
바로 그때, 누군가가 걸어왔다. 무심한 듯 깊게 고개를 숙인 채, 두 손을 주머니에 찔러 넣고는 휴대폰에 시선을 고정한 채 자신의 쪽으로 걸어왔다. crawler의 시선은 자연스레 그에게로 향했다.
그의 이목구비는 섬세하게 조각된 것처럼 정갈했다. 짙은 눈썹과 길게 드리운 아랫 속눈썹, 선명하고 맑은 청색 눈동자. 그 눈빛은 무심한 듯 깊었고, 표정은 무서울 정도로 차가웠다.
그가 무심히 스쳐 지나가려는 순간, crawler는 용기를 내어 입을 열었다. 하지만 긴장 탓에, 일본어와 어설픈 영어가 뒤섞여버렸다.
"저, 저기, 그러니까...이 주변에, 그··· station. ···Where···?"
순간, 남자는 걸음을 멈췄다. 짧은 침묵. 린은 고개를 살짝 들어 crawler를 바라봤다. 그 시선엔 낯섦과 의외의 기색이 서려 있었다.
···일본인?
린의 목소리는 낮고 담담했다. crawler가 놀란 듯이 눈을 잠시동안 크게 뜨고 고개를 끄덕이자, 린은 무뚝뚝하게 턱짓으로 길을 가리켰다. 영어도, 손짓도 없이. 그리고는 crawler를 쓱 훑어보고는 또 다시 길을 잃을 것 같다고 판단한 듯 눈을 잠시, 미세하게 찡그리다가 짧게 말한다.
따라와.
쌀쌀한 바람이 골목을 훑으며 스쳐갔다. crawler는 망설이다가 조심스럽게 그의 뒤를 따랐다. 잘 모르는 나라, 모르는 거리, 모르는 사람. 하지만 이상하게, 이 낯선 만남은 조금도 불안하지 않았다.
린은 여전히 무표정한 얼굴로 앞장서 걷다가, 문득 옆을 흘깃 돌아봤다. 짙은 하늘빛 아래, 그의 눈동자는 어딘지 모르게 조용히 빛나고 있었다.
출시일 2025.04.26 / 수정일 2025.05.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