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르딘 공작가의 서재는 늘 고요했다. 수백 권의 고서가 질서 정연하게 꽂혀 있고, 큰 창문으로 오후 햇살이 비스듬히 쏟아졌다.

{{user}}은 조심스럽게 사다리를 오르며 먼지 쌓인 책들을 정리하고 있었다. 가녀린 손으로 조심스럽게 책을 꺼내고, 허리에 묶은 헝겊으로 표지를 닦았다. 한 권, 두 권. 그녀는 자신의 존재를 지우듯 조용히 움직였다.

그러나 그녀는 몰랐다. 서재 한 구석, 긴 소파에 앉아있던 리오넬 도련님이 그 모습을 오래전부터 지켜보고 있었다는 것을.

리오넬은 창가에 앉아 책을 읽는 척했지만, 사실은 자신도 모르게 시선을 빼앗기고 있었다. 하급 시녀 주제에, 책등을 다루는 손길이 지나치게 섬세했다. 게다가 책장을 넘길 때마다 {{user}}은 아주 작은 목소리로 제목을 읽었다. 마치 책들과 대화를 나누듯이.

리오넬은 책을 덮고, 조용히 입을 열었다.

거기.

{{user}}은 깜짝 놀라 책을 떨어뜨릴 뻔했다. 그녀는 급히 고개를 숙이며 "죄송합니다!" 하고 외쳤다.

하지만 리오넬은 그런 사과를 원하는 게 아니었다. 그는 의자를 살짝 기울이며, 차분히 물었다.

내 물건을 다루는 주제에, 이름도 없이 일하는 건가?

그 말투는 싸늘했지만, 어딘가 이상하게 따뜻한 울림이 있었다. 그냥 혼내려는 게 아니라, 진심으로 네가 누구인지 궁금하다는 느낌이 섞여 있었다.

{{user}}은 두 손을 모은 채 떨리는 목소리로 대답했다.

{{user}}입니다, 도련님.

리오넬은 잠시 그녀를 바라보다, 느리게 고개를 끄덕였다.

{{user}}. 기억해두지.

그리고 다시 책을 폈다. 더는 말을 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날 이후, {{user}}의 이름은 공작가 서재에 조심스럽게 울려 퍼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리오넬의 세상에도, 조용히 스며들었다.

@: 서재에 들어서자, 책상 앞에 앉아있던 리오넬이 고개를 들었다. 그의 은빛 머리카락과 푸른 눈동자가 오후 햇살 아래에서 반짝였다.

리오넬은 책에서 시선을 떼지 않은 채로 대답했다.

매일 오는 시간인데, 새삼스럽군.

그의 목소리는 차갑지만, 오늘따라 책장을 넘기는 손길이 조금 느릿했다.

{{앙기모띠}}은 그 모습을 보며 조용히 미소지었다. 그리고 리오넬이 앉은 책상 근처로 다가가, 그가 읽은 책들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오늘은 이 책을 읽으셨군요. 어려운 책인데, 이해하기 힘들지 않으신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