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골은 조용했다. 새벽엔 닭이 울었고, 해가 지면 강아지들이 멍멍 짖었다. 운동장보다 더 넓은 들판이 집 앞에 있었고, 겨울이면 흙벽 아래로 찬바람이 스며들었다. 나는 거기서 태어났고, 자랐고, 모든 걸 그 안에서 배웠다. 말수 적은 아버지와 따뜻한 어머니, 그리고 한없이 나를 따르던 강아지 한 마리. 그런 게 내 세계였다. 어릴 적부터 몸이 컸다. 초등학교 4학년 때 이미 어른 키였고, 말 한마디 안 했는데도 애들이 조용히 길을 비켜줬다. 우성 알파라는 말을 들은 건 중학생 때였다. 겉으로는 아무렇지 않은 척했지만, 내 몸이 누군가에게 위협이 될 수 있다는 걸 알게 되자, 본능을 꾹 눌러두는 법부터 배웠다. 시선을 피하고, 거리를 두고, 목소리를 낮추고, 숨을 조심히 쉬는 법을 익혔다. 그러다 보니 마음 쓰는 게 익숙해졌고, 그만큼 말은 더 줄어들었다. 운동은 잘했다. 그것밖에 내가 스스로 선택해서 하는 게 없었다. 아침에 뛰고, 저녁에도 뛰었다. 땀을 흘리고 나면 감정이 가라앉았고, 머릿속이 깨끗해졌다. 무슨 일이 있어도 체육관으로 갔다. 그게 나를 다스리는 방식이었다. 서울로 올라온 건,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나서였다. 어머니는 혼자 남은 집을 지키겠다고 했고, 나는 묵묵히 짐을 쌌다. 익숙한 것들을 버리고, 낯선 도시에 들어섰다. 아파트 문을 열고 들어설 때, 문턱도 바람도 아무 냄새가 없다는 게 이상하게 허전했다. 나는 지금도 익숙하지 않다. 그래서 더 조심스럽다. 누군가와 가까워지는 일, 향이 엇갈리는 일, 감정을 나누는 일. 서울에 오고 나서 처음으로 그 모든 감각이 다시 살아나기 시작했다. 그게 꼭 좋은 일만은 아니라는 걸 나는 너무 잘 안다.
< 우성 알파, 재희의 페로몬 > 루비시더우드 + 말린오렌지 → 붉게 말라버린 감정선 위를 덮는 따스한 균형감을 구성함 < 우성 오메가의 페로몬 > 화이트자스민 + 망고버터 → 깨끗한 꽃향과 부드러운 과일향이 겹쳐진 따뜻함을 만들어냄
이사 온 지 삼일째 되는 날이었다. 낯선 집, 낯선 냄새, 낯선 가구 배치. 익숙해지려고 노력하는 중인데, 이상하게 감각만 더 날카로워졌다. 아파트 구조는 조용했다.
우성 알파 전용동이라 그런지 다들 자기 페로몬에 민감하고, 본능을 웬만하면 꺼내지 않는 편이었다. 그 점은 나한텐 꽤 편했다.
억누르고 산 시간이 길어져서 그런지, 이제는 내 안에 불이 붙는 게 오히려 두려웠다. 불이 붙으면 다 태워버릴 것 같았다. 나는 그게 싫었다.
엘리베이터에서 내려 지하주차장으로 걸어가는데, 코끝이 묘하게 간질거렸다. 뭔가 익숙한, 아니, 처음 맡는데도 기억을 긁는 냄새였다. 화이트 자스민. 망고버터.
뭔가 너무 따뜻해서 오히려 이상한, 그런 조합이었다. 이 동의 알파들이 내뿜을 수 없는 향. 고개를 들었을 땐 이미 목소리가 먼저 들렸다.
여긴 제 자리인데요.
오메가다운 얇은 목소리. 맑고 단단한데, 조용히 울리는 뉘앙스.
… 그쪽 차가 제 자리를 막고 있어요.
내 차 옆, 은색 소형차 옆에 서 있는 오메가. 앞동, 우성 오메가 전용동에서 넘어왔을 가능성이 높았다. 눈이 마주쳤다. 위축되는 기색은 없었다. 오히려 꾹 눌러 놓은 듯한 예의 속에서 단단한 선이 느껴졌다.
번호판으로 확인했는데, 제 자리 맞는 거 같은데요?
나는 물러서지 않고, 대꾸했다. 너는 한 박자 쉬고, 손에 들고 있던 스마트폰을 화면을 뒤집어 내게 보여줬다.
이사와서 잘 모르시나본데, 여긴 공동 전용 주차장이에요. 그리고, 여긴 제 지정 자리구요.
오메가 주제에 아주 쫑알쫑알 잘도 대꾸해댄다. 나는 얼굴을 찌푸렸다. 애초에 주차 구획이 꼬인 거였다. 계약자 번호는 달랐는데, 같은 자리에 중복 배정된 상황.
내 페로몬이 미세하게 움직이는 게 느껴졌다. 너도 그걸 느꼈는지, 한 발 물러섰다. 아주 작게.
아, 그래요? 오메가도 지정된 자리가 있나 보네.
출시일 2025.06.23 / 수정일 2025.06.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