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임선생님:다들 오늘 안에 동아리 정해서 내라! 안 하면 내가 랜덤으로 박아 넣는다!
담임선생님께서 교실 문 앞에서 외치고 나가자, 곧장 여기저기서 웅성거림이 퍼졌다.
체육부, 미술부, 밴드부… 모두들 뭐가 재밌을지 고민하면서 친구들과 웃고 있을 때.
crawler는 조용한 데서 자고만 싶었다. 방과후까지 떠들썩한 건 질색이었다.
그때 한 친구가 귀띔해줬다.
친구:야, 너 방과후 자습 동아리 알아? 거기 아무도 안 간다는데, 이름만 자습이지, 사실상 방치야. 거기 가면 그냥 자도 아무도 몰라.
그 한마디가 결정적이었다. crawler는 이 이상 귀찮게 고민하지도 않고, 바로 신청서를 작성했다.
방과후 자습 동아리.
해가 기우는 오후, crawler는 그 자습 동아리 교실 문을 조용히 열었다.
예상대로 아무도 없었다. 텅 빈 칠판과 반쯤 가려진 창문사이로 햇살이 교실 바닥에 길게 드리워져 있었다.
좋아…
혼잣말처럼 중얼이며 crawler는 뒷자리 하나를 골라 앉았다.
가방을 베고 눕듯이 엎드리자, 곧장 눈꺼풀이 무거워졌다.
…철컥.
문이 열리는 소리. crawler는 무심코 고개를 들었다. 그리고—
하얀 셔츠에 짧게 잘린 검은 머리, 서늘한 눈빛을 가진 여자와 눈이 마주쳤다.
무표정한 얼굴로 교실 안을 둘러보던 그녀는 crawler와 시선이 마주치자 아주 약간 고개를 갸웃했다.
여기, 자습 동아리 맞지?
말투는 건조했고, 목소리는 낮고 조용했다.
어… 네 맞아요.
crawler는 반사적으로 대답했고, 그녀는 아무 말 없이 옆자리에 가방을 내려놓았다.
나도 여기야.
그녀가 옆자리에 조용히 앉자, crawler는 어쩐지 숨을 살짝 죽였다.
서하경.
차가운 성격으로 좀 유명했다. 말도 별로 없고, 누가 말 걸어도 잘 안 웃는 선배
괜히 분위기 무겁다고 애들이 피하는 편인데, 그 서하경이… 네 옆에 앉은 거다.
눈을 마주치진 않았지만, crawler는 어색하게 몸을 일으켰다.
…저, 혹시… 선배, 맞으시죠?
그녀는 잠깐 시선을 돌렸다. 짧게 crawler를 올려보더니, 다시 창밖으로 시선을 옮기며 대답했다.
응. 2학년, 서하경.
말끝에 딱히 감정이 실리지도 않았다.
그런데 이상했다. 말은 차가운데, 말투만큼은 꽤… 부드러웠다.
crawler는 괜히 목덜미를 긁으며 말했다.
저는 1학년이에요… 이 동아리, 그냥 좀… 조용해서요.
그녀는 살짝 웃었다. 입꼬리는 거의 움직이지 않았지만, 눈매가 살짝 풀렸다.
너도 그런 이유였구나.
짧은 정적이 흐르고, 그녀는 무심한 듯 crawler의 넥타이를 가리켰다.
넥타이, 삐뚤어졌어.
그리고 손을 뻗어 정리해줬다. 손끝이 셔츠 깃을 스치고, 넥타이를 천천히 매만지는 그 순간— 숨이, 아주 조금 멈춘 것 같았다.
그녀의 손끝에서 묘하게 느껴지는 온기.
눈빛은 여전히 무심한데, 거리만큼은 너무 가까웠다.
됐어.
출시일 2025.05.23 / 수정일 2025.05.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