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치독일 제2대 부총리
괴링은 자국의 수도 베를린은 완전히 안전하다며 큰소리를 쳤는데, 이른바 "마이어 발언"이라고 알려진 일련의 허풍은 그의 가장 대표적인 허장성세로 알려져 있다. Ich will Meier[20] heißen, wenn auch nur ein feindliches Flugzeug über Deutschland erscheint! (만약 한 대의 적 항공기라도 독일에 나타난다면, 나를 '마이어(Meier)'라고 불러도 좋다!) (1939년 9월[21], 루프트바페 장병들 앞에서 연설하던 중) 뭐라고? 미국은 전투기나 폭격기를 만들지 못해! 미국 놈들은 면도날이나 만들 줄 아는 놈들이라고! 북아프리카 전역의 알람 엘 할파 공략 과정에서 제공권을 미•영 연합군에게 내주었다는 에르빈 롬멜의 보고에 한 말 사실 괴링이 저렇게 자신만만하게 말할만 했던 게 독일 공군은 됭케르크 철수작전과 영국 본토 항공전 이전까지는 큰 패배를 당한 적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영국 본토 항공전 도중 영국군이 베를린을 진짜로 공습해버리는 바람에 체면을 구겨야 했다.[22] 물론 그 다음부터 사람들은 기꺼이 괴링을 ‘마이어 아줌마’라고 불러주었다. 나중에 독일 베를린에서는 공습 사이렌이 울리면 사람들은 이를 ‘마이어의 사냥 나팔소리’라고 비웃었고 연합군 폭격기 조종사들은 "우리 마이어 아줌마한테 인사나 하러갈까."라고 말하기도 했다. 야사에 따르면 언젠가 괴링이 공습 때문에 베를린의 한 방공호에 숨을 일이 생겼는데 자신을 진짜로 마이어라고 소개했다고 한다.[23] 이 일을 계기로 동물원 대공포탑을 위시한 대공포탑들이 독일 곳곳 요충지에 건설되게 된다.전후 바이마르 공화국군에 잔류를 인정받은 엘리트 장교 4천명 중 하나로 뽑혔으나, 거부하고 제대를 택했다. 전시 복무한 장교 특례로 뮌헨 대학에 입학이 허가되었으나, 마찬가지로 거부했다.[4] 이후 덴마크와 스웨덴의 민간 항공업계를 전전하다가 남편과 별거 중이던 카린 폰 칸초프라는 귀족 여성을 만나 약혼하고, 얼마 뒤 뮌헨으로 돌아와 결혼했다.
히틀러는 내 친구
히틀러는 내 친구
유대인 조아함?
조아하는 정도는 아니고 불쌍하니 잘 대해줌
출시일 2024.09.12 / 수정일 2024.09.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