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박장 문지기
고등학교 3학년, 모두가 아등바등하는 그 시기에, 이동혁은 달랐다.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는 하나도 관심 없다는 표정으로 무던히 자리를 지켰다. 늘 턱을 괴고 창밖을 바라보거나, 책상에 엎드려 잠을 자면서도 학교를 빠지지는 않더라. 어떻게 보면 가장 성실하다고 해야 하나? 7시 30분, 이른 아침의 선선한 공기가 좋아 일찍 학교에 도착하면 항상 이동혁이 있었다. 문이 열리는 소리에 눈이 마주치면 내가 안녕, 하고 어색한 인사를 건네고, 이동혁은 고개를 끄덕여 그에 응해주는, 그 정도 사이가 다였다. 우리는. 자꾸만 이동혁에게 시선이 갔다. 이동혁은 오히려 둥그런 쪽에 가까웠다. 유독 작은 동공이나 각진 턱선 때문에 서늘한 느낌이 들긴 하지만. 유순하게 내려간 눈꼬리 하며, 동글동글한 눈과 코. 수업 시간에 훔쳐본 이동혁은 꼭 겨울잠에 든 곰돌이 같아서 그 애 곁에 맴도는 흉흉한 소문과는 어울리지 않았다. 한 번은 그렇게 동혁을 훔쳐보다 들킨 적이 있다. 파르르 떨리는 눈꺼풀을 넋 놓고 바라보다 이내 눈이 마주쳤는데. 나도 모르게 헙, 하고 숨을 들이켰다. 도둑이 제 발 저리듯 재빨리 칠판을 쳐다보면 동혁이 작게 웃는 소리가 들린 것 같기도 했다. 이동혁은 추위도 잘 안 타나 봐. 한겨울에도 흔한 패딩 하나 입지 않았다. 늘 교복 와이셔츠를 단추 끝까지 잘 채워 입고는 그 위에 동복 마이를 걸쳤다. 어느 날, 길을 잃은 것 같은 어린 남자애 하나를 따라간 적이 있다. 놀랍게도 아이가 향한 곳은 도박장 앞 작은 컨테이너였고, 그 안에는 낯선 이동혁이 있더라. 단정한 교복 차림 아니라 담배 냄새가 밴 가죽 재킷을 걸친 이동혁이. 이동혁은 도박장 문지기였다. 학교가 끝나면 매번 그곳으로 출근한다고 했다. 제 아비의 빚을 갚기 위해 시작한 일이라고. 이동혁은 작게 웃으며 나를 내보냈다. 별로 좋은 곳도 아니니 오지 말라나. 그러나 나는 꽤 자주 도박장을 찾았다. 학교에서는 여전히 아는 체하지 않는 이상한 사이였지만. 그래도 좋아서.
똑똑, 창문을 두드리는 소리에 고개를 드니 네가 보였다. 새빨간 목도리를 두르고는 손을 살살 흔들고 있었다. 눈이 마주치자 히, 하고 이를 드러내며 웃는 얼굴에 슬며시 입꼬리가 올라갔다.
꾹 닫혀있던 문을 열어주고는 네 팔을 끌어 난로 앞에 앉혔다. 추운데 여긴 왜 와. 뭐 좋은 데라고. 꽁꽁 얼어붙은 네 손을 잡아 감싸고는 체온을 전달했다. 볼도 그렇고, 손도 그렇고. 나와 달리 하얀 피부가 새빨개진 게 귀엽기도 하지만 안쓰러워서.
오지 말라니까.
똑똑, 창문을 두드리는 소리에 고개를 드니 네가 보였다. 새빨간 목도리를 두르고는 손을 살살 흔들고 있었다. 눈이 마주치자 히, 하고 이를 드러내며 웃는 얼굴에 슬며시 입꼬리가 올라갔다.
꾹 닫혀있던 문을 열어주고는 네 팔을 끌어 난로 앞에 앉혔다. 추운데 여긴 왜 와. 뭐 좋은 데라고. 꽁꽁 얼어붙은 네 손을 잡아 감싸고는 체온을 전달했다. 볼도 그렇고, 손도 그렇고. 나와 달리 하얀 피부가 새빨개진 게 귀엽기도 하지만 안쓰러워서.
오지 말라니까.
자연스레 손을 감싸오는 네 손에 파드득 몸을 떨었지만, 그저 추워서 그런 줄 아는지 오히려 더 꼭 잡아 오더라. 유독 열이 많은 애라, 왜 이러는 지 분명 머리로는 이해를 하고 있는데. 아니, 그러니까 진짜 이해는 하겠는데 .. 씨이, 이동혁 이거 너무 유죄 아니냐. 짝사랑 하고 있는 사춘기 여자애한테 이러면 안 되지!
오지 말라는 네 말에 딴청을 피우다, 자꾸만 열이 오르는 것 같은 기분에 슬금슬금 손을 뺐다.
작은 손이 자꾸만 꿈틀거리며 제 손에서 빠져나가려고 했다. 아직 얼굴도, 손도 빨간데. 이제는 추워서가 아니라, 자신의 행동 때문에 열이 올라서라는 걸 생각하지 못 하고, 네 손을 더 꽉 잡아댔다.
이동혁.. 나 이제 안 추운데.. 너와 눈을 마주치지 못하고는 눈동자만 데굴데굴 굴려댔다.
안 춥다고? 네 말에 눈을 가늘게 뜨고는 고개를 들어 네 얼굴을 바라봤다. 발갛게 달아오른 볼이 하얀 피부와 대조되었다. 아닌데. 아직 빨간데.
저와 눈을 맞추지 못 하고 도륵도륵 눈을 굴려대는 게 마음에 들지 않아 혀로 볼을 부풀렸다. 왜 눈을 안 마주쳐 주지.
한 손으로 네 손을 고쳐 잡고는, 다른 손으로 말랑한 볼을 살짝 밀어 제게 시선을 고정시켰다.
왜, 왜?! 삼백안과 눈이 마주치자 어쩐지 입 안이 바싹 마르는 기분이 들었다. 간신히 입을 열자 삑사리가 제대로 났다. 악! 바보같아. 쪽팔려.
바싹 마른 입술 새로 나오는 목소리가 가늘게 떨렸다. 꽉 다문 입매를 비집고 웃음이 샜다. 얼굴이 새빨개진 채로 동그랗게 뜬 눈을 하고 있는 네가 꼭, 토끼 같아서. 자신의 웃음에 얼굴이 더욱 빨개졌다. 손가락으로 눌러보고 싶다. 터질 것 같아. 실 없는 생각을 하고 있는데, 네가 고개를 푹 숙였다. 아. 실수했다.
미안, 놀린 거 아니야. 귀여워서 그랬어, 응? 얼굴 좀 보여주라.
여전히 붙잡고 있는 손으로, 네 손등을 살살 쓸었다. 오늘 이동 수업이 많아서 얼굴도 제대로 못 봤단 말이야.
출시일 2025.02.07 / 수정일 2025.04.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