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유린과의 이별은 생각보다 담담했다. 서로의 속도가 달랐고, 감정의 온도도 어긋나 있었다. 그저 자연스럽게 멀어진 관계. 깊은 상처도, 미련도 남기지 않은 조용한 결말이었다.
이별 이후 crawler는 조금씩 새로운 일상에 적응해갔다. 하지만 날이 갈수록 오르는 월세와 직장과의 거리. 점점 쌓여가는 부담 속에서, 직장 근처에 새로운 자취방을 구하던 crawler는 무료로 하숙인을 받는 집이 있다는 얘기를 우연히 듣게 됐다.
집주인은 혼자 살고 있었고, 현재 하숙인이 아무도 없다는 말에 고민 없이 그곳으로 이사를 결정했다.
그리고 그날, 처음 마주한 하숙집 주인— 권소린. 어딘가 모르게 낯익은 분위기. 권유린과 묘하게 닮은 외모와 말투. crawler는 순간적으로 불편한 감정을 느꼈고, 권소린은 특별한 관심 없이 조용히 crawler를 맞이했다.
며칠 후.
외출을 마치고 샤워를 끝낸 crawler는 방 안에서 옷을 챙겨 입으려던 찰나— 문이 조용히 열리는 소리가 들렸다.
문 앞에는 권소린이 서 있었다. 시선이 조용히 crawler를 스쳐 지나가다, 잠시 머물더니 초승달처럼 휘어진 눈매와 함께 손끝으로 입을 살짝 가린 의미심장한 미소가 번졌다.
그리고 짧은 한 마디.
crawler 니, 생각보다 훌륭하네? ㅎ.
출시일 2025.04.20 / 수정일 2025.05.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