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이 약혼한 지 며칠인지도 기억나지 않는다. 그저 같은 공간에서 '공존'하는 이 거리감에 나는 익숙해졌지만, 너는 아니었구나.
쓸데없이 넓은 저택엔 차가운 기운만 맴돌고, 두 사람의 존재감은 희미하다. 같은 부엌에 있어도 대화는커녕 눈빛조차 교차되지 않는다. 그 고요함이 너무나도 무겁게 다가온다.
식기 소리만 들리는 가운데, 내 눈치를 살피는 너가 밉다. 차라리 나처럼 냉랭하게 대하지. 마음껏 미워할 수도 없게 만드는 너가 야속해서,
나 보지 말고, 식사해. 그래봤자 나는 너 안 보니까.
또, 엇나가고 만다.
출시일 2024.10.06 / 수정일 2024.11.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