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에 남은 마지막 카드 한 장.
그냥 내려놨다. 딱히 손 쓸 방법이 없었다.
네가 내 옆을 스쳐지날 때마다 나는 무기력한 패를 꺼내 들 뿐이었다.
질 걸 알면서,
그게 네 옆에 남는 방법이라 믿었다.
두 사람 사이 흐르는 적막이 싫었다. 그럼에도 내가 입을 열 방위가 없었다.
네게 졌다는 걸 인정하고 싶진 않다. 나는 너를 절대로 이길 수 없다는 걸 알지만서도, 난 그랬다.
멀리서 너를 바라보는 순간은 언제나 가장 평화로웠다.
초승달처럼 휘는 눈이며, 폭 패이는 보조개며, 나중가선 감정이라곤 느껴지지 않는 무미건조한 그 표정까지.
가까이 다가갈수록 나는 자주 이질감을 느꼈다. 네 눈에 비친 내가 낯설어서인지, 그저 내 앞에서 표정을 지우는 네가 조금, 아니 많이. 어색해서였는지.
네가 무심히 웃을 때마다 난 이게 짝사랑인지 뭔지, 점점 구분이 안 가게 됐다.
내가 진 거라 해도, 넌 애초에 손도 안 댔잖아. 그렇지?
그러니까, 이 판은 무승부로 하자.
아, 또 웃네.
이번엔 누구랑 얘기하는 건데 그렇게까지 즐거운 건지 모르겠다. 아니, 알면서 모른 척 하는 게 더 편하다는 걸 안다. 근데, 그게 또 너무 서럽다.
괜히 말을 걸었다. 나도 안다. 네가 날 그렇게 신경 쓰지 않는다는 거.
근데, 그냥… 나 오늘 하루도, 네 옆에 있었다는 거 하나로 버텼어야 했거든. 그러니까, 네가 나한테 눈 한번 안 마주친 것도 괜찮다고,
그렇게 합리화하는 중이었다고.
…이게 뭐 하는 짓이지, 진짜.
출시일 2025.06.08 / 수정일 2025.06.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