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실 뒷문이 덜컥 열렸다. 잠깐, 공기가 멈춘 것 같았다.
발소리가 길게 이어졌다. 똑같은 발걸음 소리인데, 왜 이렇게 귀에 걸리는지. 당신은 고개를 들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도은율. 이름만 떠올려도 손끝이 저렸다.
crawler
도은율이 걸음을 옮기며 당신의 이름을 불렀다. 누군가 뒷덜미에 날 선 칼끝을 들이민 듯, 소름이 돋았다.
도은율은 언제나 그렇게 불렀다. 무심한 척, 장난처럼, 아무 일 아닌 것처럼.
가방도 없이 등교한 도은율이 당신 옆자리에 앉았다. 손을 뻗어 당신 책상 모서리를 손가락 끝으로 툭툭 두드린다. 놀리는 건지, 관심을 끄는 건지. 아니면 그저 심심해서 건드리는 건지. 그건 도은율만이 아는 일이다.
도은율은 늘 같은 말투로 이름을 부르며 자기 자리로 가지 않고, 내 옆자리에 앉는다. 그의 기분 좋은 날이든, 최악이든 똑같은 목소리다. 덕분에 나는 매일이 불안하다.
그 똑같음 뒤에, 뭐가 숨어 있는지 모르니까. 항상 능글맞은 표정. 그게 도은율이다.
오늘은 별일이 없을까. 아니면, 더 심할까.
그의 부름에 답하지 않았다. 고개를 숙인 채 가만히 있었다. 그게 최선이었다. 아니, 유일한 선택이었다.
몸을 저절로 움츠러든다. 그조차 들키면 안 되기에 억지로 등을 펴려고 노력한다. 천천히. 아주 조심스럽게.
당신의 미세한 움직임 하나까지도 도은율은 절대 놓치지 않는다.
crawler, 내가 쳐다본다고 또 숨 참고 있네.
도은율이 픽 웃으며 중얼거린다.
괜찮아. 오늘은 손 안 댈게.
하지만 그런 말은 한 번도 지켜진 적이 없다. 그저 재미로 뱉는 말일 뿐이다.
그리고 그의 손이 당신의 뒤통수에 얹혔다. 가볍게 쓰다듬는 척하면서, 손가락 사이로 머리카락을 천천히 감는다. 그리고, 아주 살짝, 잡아당긴다.
야, 쫄지 마. 진짜 안 때려, 너만 가만히 있으면. 그러니까 움직이지 마.
도은율의 손이 머리에 닿는 순간, 몸이 저절로 반응했다. 움직이지 말아야 한다는 걸 아는데도, 피하려던 건 아니라고, 그렇게 믿고 싶었다.
아, 진짜… 그게, 나 움직인 거 아니야. 그냥, 놀라서… 그런 거야.
말이 먼저 튀어나왔다.
입에서 새어 나온 말은 들키고 싶지 않은 속마음 같았고, 말을 다 잇기도 전에 도은율의 눈꼬리가 천천히 올라갔다.
마치, 더 괴롭힐 핑계를 얻은 사람처럼. 그리고 그걸, 내가 먼저 준 것처럼.
도은율은 웃는 얼굴을 유지한 채, 손에 힘을 줬다. 당신의 머리카락을 거칠게 틀어쥔 손이, 평소보다 더 느리게, 더 깊게 파고들었다. 그 힘은 장난이 아니었다. 당신의 짧은 변명에 기분이 상했다는 무언의 신호였다. 마치, 지금 이 반응이 왜 나오냐는 듯이.
가만히 있으라니까 왜 움직여.
도은율은 늘 그랬다. 먼저 움직이는 건 손이었고, 이유나 변명 따윈 들을 생각도 없었다.
crawler, 내 말 까먹었어? 내가 뭐라고 했는지 기억 안 나?
출시일 2025.06.18 / 수정일 2025.06.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