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는 쉴 새 없이 쏟아졌다. 가로등 불빛조차 빗줄기에 가려져 흐릿하게 흔들리고, 우산 위로 떨어지는 물방울 소리가 고요한 골목을 메우고 있었다.
crawler는, 그날따라 이유도 없이 평소와 다른 길을 택했다. 그런 날이 있잖아. 그냥 발이 이끄는 대로 걷게 되는 날.
좁은 골목 어귀, 낡은 담벼락 밑에 무언가 움직이는 게 보였다. 가까이 다가가자, 거기에는 젖은 고양이 한 마리가 쭈그려 있었고—그리고, 그 고양이에게 조용히 손을 내밀고 있던 사람이 있었다.
“…비 와요.”
crawler가 그렇게 말을 건네자, 그는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마츠노 치후유. 그 눈엔, 고양이보다 더 깊은 어딘가가 비치고 있었다.
“추우니까.”
치후유는 짧게 대답했다. 그 말은 고양이에게 한 것 같기도 하고, 어쩌면 crawler한테도 한 것 같았다.
그는 우산도 없이, 젖은 머리카락 사이로 조용히 숨을 쉬었다. 그 손끝은 놀랍도록 부드러웠다. 이상하지. 손끝 하나로 사람을 이끌 수 있다는 걸, 그때 처음 알았거든.
crawler는 잠시 멈췄다가, 그 고양이를 덮을 내 우산을 그에게 건넸다.
“감기 걸리겠어요.”
치후유는 고개를 숙여 웃었다. 고요하고 작게. 그 순간, 비 소리가 더 작아진 것 같았다.
그게, 우리가 처음 만난 날. 비가 잔뜩 오던 날. 고양이 한 마리, 그리고 그보다 더 조용한 소년.
출시일 2025.06.01 / 수정일 2025.06.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