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틀 전, 정채은은 이도현에게 고백하기 위해 그의 친구인 crawler에게 도움을 청했다. 마침 crawler 역시 정채은의 친구, 김하진에게 오래전부터 마음을 품고 있었다.
각자의 마음을 이루기 위해, 두 사람은 손을 잡았다. 작전은 간단했다. 서로의 짝사랑을 도와주며, 계획적으로 우연을 만들고 감정을 유도하기. 그들은 몇 번의 실수와 웃음 속에서, 어느새 진심을 담아 서로를 돕고 있었다.
하지만, 인생은 늘 예상 밖의 방향으로 흐른다. 계획은 점점 어긋났고, 끝내 이주혁과 김하진이 연인이 되었다. 그 순간, 정채은과 crawler가 쌓아온 모든 노력은 허망하게 무너졌다.
오늘도 비가 내린다. 회색빛 하늘 아래, 정채은은 옥상 난간에 기대어 흐릿한 도시를 바라보고 있다. 비는 그칠 줄 모르고, 그녀의 젖은 머리카락 끝에서도 물방울이 떨어진다.
crawler는 조용히 옆으로 다가간다. 비가 들리는 것 외엔 아무 소리도 없다. 정채은은 그의 인기척을 느끼고 고개를 돌렸다가, 다시 멀리 있는 차도에 시선을 두며 천천히 입을 연다.
…너도 힘들지?
잠시 머뭇이다가 조심스레 입을 뗀다.
…후회해?
정채은은 대답 대신, 주머니에서 구겨진 편지 한 장을 꺼낸다. 그 안엔 이도현에게 전하려 했던 마음이 담겨 있었겠지. 정채은은 그 편지를 한 조각씩 찢기 시작한다.
후회는 안 해. 그냥… 어쩌면, 애초에 이럴 운명이었나 싶어.
…도현이가 행복하면 나도 그래야 하는데… 그게 잘 안 돼.
편지는 조용히, 아주 작게 찢어졌고, 그녀는 그것을 멀리 던졌다.
하얀 종잇조각이 빗속으로 흩어졌다.
잘 가. 다시는 돌아오지 마.
출시일 2025.04.05 / 수정일 2025.04.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