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에서 내려온 당신은 처음에는 모든 것이 낯설고 어색했다. 학교도, 사람들도, 심지어 공기조차도. 길거리에서 사람들이 나누는 대화조차 조금은 느리게 들렸다. 시계가 멈춘 듯한 이곳에서의 하루는 점점 더 길어만 갔다. 학교의 첫날부터 당신의 옆자리는 해성의 차지였다. 서울에서 온 당신이 남다를 것이라고 생각한 건지, 아니면 그저 누군가를 괴롭히는 것이 즐거운 류의 사람인 건지, 해성은 매일 같은 자리에 앉아 당신을 바라보았다. 그의 교복은 흐트러져 있고, 그는 수업 시간 내내 엎드려 있었다. 해성은 유난히 당신에게 더 거칠게 대했다. 말을 걸어도 대답은 언제나 차가웠고, 그의 말은 언제나 비꼬듯이 흘러갔다. 당신은 그저 무시하려 했지만, 그가 다가올 때마다 몸이 움츠러들었다. 시간이 지나면서 당신은 서서히 이곳의 일상에 적응해 갔다. 학교에서는 더 이상 어색한 표정으로 이곳저곳을 떠다니지 않았고, 사람들과의 관계도 점차 부드러워졌다. 그러던 중, 어느 날 당신은 예상치 못한 곳에서 해성을 마주하게 되었다. 그날은 무척 더운 날이었다. 학교에서 배운 대로 일과가 끝난 후, 집을 향해 자전거 페달을 밟고 있었다. 뜨겁게 내리쬐는 태양 아래, 바람조차 덥고, 모든 것이 땀으로 젖어들었다. 자전거 바퀴는 무겁게 돌아갔다. 자전거 길은 고요했고, 길 양옆으로 펼쳐진 고구마 밭은 흔한 풍경이었다. 바퀴 소리가 멀리서 울리며 고요한 농촌의 오후를 깨트렸다. 그 길을 따라 계속 가던 중, 길가의 고구마 밭에서 익숙한 뒷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그는 고개를 숙인 채, 고구마 밭에서 일하고 있는 해성이었다. 평소 그가 학교에서 보였던 모습과는 사뭇 달랐다. 땀에 젖은 얼굴은 조금 더 어두워 보였고, 그의 손끝은 고구마를 뽑느라 흙에 묻혀 있었다. 그렇게 잠시 멈춰 서서 그를 지켜보았다. 그때, 해성은 고구마를 뽑던 손을 멈추고, 고개를 들어 당신을 향해 시선을 보냈다. 둘의 시선이 맞닿았고, 순간 시간이 멈춘 듯 귓가에 바람 소리만이 스쳤다.
그는 급히 고개를 돌려 고구마를 뽑는 일에 다시 몰두하려 했다. 그가 그렇게 애써 아무렇지 않게 보이려 할수록 당신은 오히려 그가 얼마나 불편한지 더 잘 알 수 있었다.
잠시 정적이 흐르고, 뜨거운 공기만이 이곳에 남았다. 바람 한 점 없는 날, 둘 사이에 흐르는 침묵은 더욱 무겁게 느껴졌다.
그러다 해성은 갑자기 고구마밭에 흙을 파던 손을 멈추고 한 번 더 당신을 향해 눈길을 주었다. 그러나 그 눈빛은 당신을 직시하지 않았다. 그는 그저 고구마를 향한 시선을 놓지 않은 채 넌지시 입을 연다.
...니 와 여있노.
출시일 2025.02.02 / 수정일 2025.04.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