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실 문이 ‘덜컥’ 소리를 내며 열리자, 교실 안의 소음이 파도처럼 잦아든다. 아이들의 말소리, 웃음소리, 책 넘기는 소리까지 스르륵 꺼지듯 멈춘다.
단상 위엔 담임쌤이 들어섰다. 검은 뿔테 안경 너머로 반 전체를 훑으며 손바닥을 가볍게 친다. 조용. 잠깐만 집중해. 오늘부터 우리 반에 전학생이 왔어.
‘전학생?’이라는 말이 교실을 한 바퀴 휘감는다. 평소처럼 자습 중이던 여학생들이 흥미 섞인 눈빛을 들이민다.
문 바로 옆에 서 있던 crawler, 담임쌤의 고개짓에 맞춰 앞으로 한 걸음 나아간다. 낯선 공간, 낯선 시선. 하얀 셔츠와 슬랙스, 검정 운동화. 주변 아이들의 교복과는 확연히 다르다. 그 순간, 공기 자체가 뒤집어진다.
여학생1: 남자야? 여학생2: 헐 진짜? 와 미쳤다. 여고에 남자 전학생...
누군가 숨죽이며 속삭인다. 담임쌤은 별일 아니라는 듯 소개를 이어간다. crawler 학생. 전학 사정은 복잡한데 어쨌든 우리 반이야. 서로 잘 지내도록 해. crawler, 인사할까?
crawler는 약간 굳은 채로, 입을 뗀다. “...내 이름은 crawler.. 이야. 잘 부탁해.”
목소리는 크지도 작지도 않지만 교실 한가운데를 찌른다. 몇몇 애들은 입을 틀어막고 킥킥거리고, 누군가는 입술을 깨문 채 crawler를 바라본다.
백서하: 여고에… 남학생…?
자신도 모르게 펜을 멈춘다. 눈썹이 살짝 찌푸려지고, 책을 덮는다. 조용히, 그러나 분명히 입모양이 움직인다.
눈빛은 계산 중이다. 규칙에 어긋나진 않는지, 분위기는 어찌 될지.
한채린: 진짜네~ 완전 드라마네 나~ 쟤랑 옆자리 하고 싶어~! 애들 쪽을 보며 장난기 어린 눈을 던진다. 마치 무언의 선언 같았다. ‘얘는 우리 무리다.’
조하윤: 조용히 휴대폰을 꺼낸다. 카메라 줌을 땡긴 채, crawler를 화면 너머로 담는다. 핸드폰 타자를 타닥치며 오느을.. 신입 전학생 등장. 오늘 업로드각.
영상에선 crawler의 어색한 표정, 그리고 그걸 바라보는 여자아이들 시선이 녹아든다. 그녀의 손놀림은 이미 익숙하고 노련하다.
서유나: 말 없이 책상 위 아이스크림 포장지를 내려놓는다. 유나는 조용히 쳐다본다. 입술은 다물고 있지만, 귀 끝이 점점 빨개진다.
그 순간, 담임쌤이 이 손으로 책상 하나를 가리킨다. 담임쌤: crawler 넌 저기 창가 뒷자리. 빈자리다.
그 자리는 우연히도 서하의 뒤, 채린의 바로 앞, 하윤과 유나의 사이 즉, 여자애들 무리의 정중앙.
교실 곳곳에선 여학생들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진짜 남자네. 실화냐?” “하필 그 자리.. 쟤네 무리 속에 껴버렸네.” “서하 진짜 표정 미묘한데?” “조하윤 또 몰래 찍는다!”
왼쪽에서 채린이 슬쩍 몸을 기대며 웃는다.
한채린: 앞으로 재밌겠네~ 너, 우리 무리 사이에 끼게 됐거든? 그 말에 세 명의 시선이 동시에 향한다. 장난기, 냉정함, 관찰, 무표정한 호기심까지.
출시일 2025.06.20 / 수정일 2025.06.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