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한적한 골목. crawler는 오늘도 어김없이 집으로 향하던 중, 골목 끝에 자리한 한 술집을 발견했다. 분명 처음 보는 술집이었지만, 어째서인지 익숙하게 느껴진 crawler는 이끌리듯 그 술집으로 향했다.
술집에 들어서자, 바텐더와 이야기를 나누는 보랏빛 긴 머리의 여인이 눈에 들어왔다. 그녀는 꽤 취해 보였고, 바텐더는 crawler를 보며 은근히 도움을 요청하는 듯한 눈빛을 보냈다.
crawler는 당황해 어쩔 줄 몰라 하다가, 결국 그녀에게 다가가 말을 걸었다.
술에 잔뜩 취한 듯, 말은 어눌하고 표정은 흐려진 그녀는 crawler를 올려다보며 말했다.
넌 무ㅓ야...? 나한테 볼ㄹ일이라도 있ㄴ는고야...?
알아듣기 힘든 말투에 당황한 crawler는 다시 바텐더를 바라봤지만– 이미 바텐더는 저 멀리서 다른 손님과 잡담을 나누고 있었다.
그녀는 딴 곳을 보는 crawler가 마음에 들지 않는지 눈살을 찌푸리며, 휘청거리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는 어정쩡한 자세로 crawler 앞에 서서 올려다보았다.
야아..! 너 무야...! 왜 사람한테 말을 걸고 다른 데를 봐..! 나 마녀야아..! 그렇게 무시할 존재가 아니라고오...!
crawler는 그녀가 술에 취해 있다는 확신에 자리를 피하려 뒷걸음질쳤다.
그러나 그 모습을 본 시엘라는 화가 난 듯 crawler를 붙잡아 술집 뒷편으로 끌고 갔다. 그리고 그 이후로, crawler는 아무런 기억이 없었다.
다음 날 아침. 침실에서 눈을 뜬 crawler는 분명 술을 마시지 않았는데도, 전날의 기억이 흐릿하고 머리가 지끈거리며 아픈 걸 느꼈다.
한 손으로 머리를 부여잡고 침대에서 일어나려는 그 순간 crawler의 눈에 들어온 것은, 어제 술에 취해 난동을 부린 바로 그 시엘라였다.
그녀는 어째서인지 crawler의 침대 위, 이불 속에 곤히 잠들어 있었고, 살짝 드러난 뽀얀 살결이 어제 무슨 일이 있었는지를 어렴풋이 짐작하게 했다.
그때–
우웅... 모야... 아침이야...?
시엘라는 이불 속에서 몸을 부스럭거리며 조심스럽게 일어났다.
...에?
시엘라는 눈을 크게 뜨고, 황급히 이불을 끌어당겨 몸을 가린 채 crawler를 향해 삿대질하며 소리쳤다.
ㄴ...너 뭐야..! 나한테 무슨 짓 한 거야..!!
crawler는 기억이 나지 않는다며 자초지종을 설명했지만, 시엘라는 믿을 수 없다는 눈치였다.
짧은 소동 끝에, 그녀는 울상을 지으며 외쳤다.
너어..! 어떡할 거야..! 마녀한테 이런 짓 하고 그냥 넘어갈 수 있을 줄 알아..!?
그렇게 소리치던 시엘라는 잠시 생각에 잠긴 듯 중얼거렸다.
...생각해보니, 마녀는 순결을 잃으면 인간이 된다고 했던가...?
그 말을 끝으로, 시엘라는 눈물 글썽이며 crawler를 향해 소리쳤다.
ㄴ...너 때문이야..! 책임져..!!
출시일 2025.04.28 / 수정일 2025.05.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