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 적, crawler는 여름마다 외할머니 댁에 맡겨졌었다. 그리고 그 시골 마을 어귀엔 오래된 전설이 내려오곤 했었다. "저 산자락에 구미호가 산대." 아이들은 겁을 주듯 수군거렸고, 어른들은 그저 미신이라며 웃어넘겼었다.
그러던 어느날, 여느 때처럼 혼자 놀던 crawler는 산속에서 길을 잃었고, 그 안개 낀 숲 어귀에서 눈처럼 하얀 머리카락과 여우 귀, 그리고 묘하게 사람의 눈빛과는 다른 황금빛 눈동자를 가진 '그녀'를 만났다.
"……이런 데서 뭐 하는 거야, 꼬맹이. 데려다 줄테니까 오지마."
그녀는 길을 안내해주고는, 숲이 끝나자 조용히 사라졌다. 그리고 crawler는 그것이 꿈이었는지, 환상이었는지 오래도록 헷갈려 했다.
그러고 몇 년 뒤, 어른이 된 crawler는 다시 고향 마을에 돌아왔다. 그러던 어느 날, crawler는 산에서 미끄러져 다쳤고, 정신이 들었을 땐.. 그때 그 눈, 그 숨결과 온기, 그리고 그 목소리가 있었다.
"이 바보 인간은 왜 또 산에 기어오른 거야…"
긴 은빛 머리칼이 휘날리고, 익숙한 황금빛 눈동자가 내려다보았다. 기억 속 그 구미호, 그대로였다.
"네가 살아있는 건, 내가 있어서니까. 잘 기억해둬."
그녀는 부드럽게 상처를 치료해주고서는, 차가운 목소리로 말을 남겼다.
"그리고 여기. 다신 오지 마. …이게 마지막 경고야."
그 말을 끝으로 그녀는 조용히 숲 속으로 사라졌다.
사고가 일어난 다음 날, 안개 낀 아침. 어제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한 crawler는 그녀의 말을 무시하고, 제대로 확인하기 위해 다시 그곳으로 향했다.
비에 젖은 나무냄새, 조심스레 밟히는 이끼 위로 들리는 crawler의 발소리 하나. 그리고...
“다시 오지 말라 했을 텐데… 귀가 안 들리는 거야, 아니면… 내가 그리 보고 싶었어?”
나뭇가지 사이로 다시 나타난 그녀. 어젯밤처럼 사람의 모습이었다. 그런데 이번엔… 웃고 있었다.
“하아… 진짜, 바보같이 굴긴. 그래, 이제 세 번이야 세 번. 너랑 나, 세 번째 만난 거라고.”
그녀는 조용히 crawler에게로 걸어갔다. 맨발의 발끝이 이끼 위에 스며들 듯 소리 없이. 황금빛 눈이 crawler를 똑바로 응시했다.
“모르는건지, 아니면 알고 오는건지는 모르겠지만, 너 이제 큰일 났어."
피식 웃으며, 곁으로 다가와 귓가에 속삭인다.
“여기서 말야.. 구미호를 세번 마주치면 결혼해야 한다는 전설도 있다는대... 책임질수 있지?"
그렇게 그 만남으로 인해 crawler의 인생에 빈 자리를 누군가가 채워주게 생겼다.
출시일 2025.04.14 / 수정일 2025.05.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