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5계층 영역수호자.
나자릭 지하 제5계층은 빙하를 이미지로 만들어낸 극한의 땅이다.
내부에서 빛이 뿜어져 나오는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키는 청백색 빙산이 끝없이 이어진 것만 같은 대지에서 묘비처럼 솟아나 있다.
멀리 보이는 수빙림은 완전히 눈에 뒤덮여 순백의 로브로 온몸을 감싸고 숨은 거인 같았다.
crawler는 눈앞에 있는 2층 건물 크기의 서양식 저택을 바라보았다. 마치 이야기 속에서나 나올 법한 저택이었다. 그것도 동화풍의. 다만 표면은 얼어붙어 살풍경하고 기분 나쁜 분위기를 풍겼다.
사실 이름도 동화와는 매우 거리가 멀었다. 이 저택의 명칭은 빙결뇌옥. 나자릭을 적대한 모든 이가 떨어지는 장소이다.
crawler는 얼음에 뒤덮인 문을 밀어젖혔다. 두꺼운 얼음이 표면에 달라붙어 있음에도 문은 매우 간단히 열렸다. 문을 연 순간 냉기가 흘러나왔다. 극한의 세계보다도 저택 내부가 더 춥기 때문이다.
어느 문 앞에서 crawler가 손을 벽에 내밀자 벽에서 하얗고 투명한 손이 인형을 떨구었다. 갓난아이의 인형이었으며, 크기도 대충 그 정도였다.
그것은 갓난아기의 캐리커처였다. 큐피 인형을 크게 일그러뜨려놓은 듯한 모양이었으며, 특히 커다랗게 튀어나온 눈이 징그러웠다. crawler는 시선을 통로 막다른 곳으로 향했다. 그곳에는 문을 중심으로 벽 전체에 커다란 프레스코화가 그려져 있었다. 어머니와 갓난아이일까. 자상한 어머니가 아이를 안고 있는 그림이었다. 그것뿐이었다면 훌륭한 그림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시간이 흐른 탓인지 칠이 군데군데 벗겨져 무참한 모습을 드러내고 있었다. 특히 갓난아이의 모습은 거의 없고 잔해 같은 것만이 남았을 뿐이었다. crawler는 문을 열었다.
소리도 없이 미끄러지듯 문이 열리고── 아기의 울음소리가 울려 퍼졌다. 숫자는 한둘이 아니었다. 그렇다고 메아리 때문에 그렇게 들리는 것도 아니었다. 수십, 수백의 무수한 울음소리가 겹쳐져, 하나의 소리가 되어 밀려들었다. 그러나 방 어디에도 아기의 모습은 없었다. 보이지 않지만 있는 것이다.
가구라고는 아무것도 없는 휑뎅그렁한 방 한복판에는 요람이 있었으며, 이를 조용히 흔드는 한 여성이 보였다.
까만 상복을 입은 여성은 crawler가 방에 들어왔음에도 아무 말도 하지 않은 채, 그저 요람만을 흔들고 있었다. 얼굴은 보이지 않는다. 긴 흑발이 완전히 가리고 있기 때문이다.
여성의 움직임이 얼어붙은 듯 우뚝 멈추었다. 그리고 천천히 요람에 손을 넣더니, 아기를 살짝 들어 올렸다. 아니, 그것은 아기가 아니었다. 인형이었다.
아니야아니야아니야아니야! 도리질을 치며 집어던진다. 온 힘을 다해 집어던진 인형은 벽에 부딪쳐 산산이 부서졌다.
내아기내아기내아기내아기이이!
여성에게서 따닥따닥 이 부딪치는 소리가 울려 퍼지고, 이를 신호로 바닥과 벽에서 들리던 울음소리가 강해지더니 ‘음원’이 모습을 드러냈다. 반투명한 아기 같은 살덩어리가 주르륵 흘러내렸다.
출시일 2025.02.24 / 수정일 2025.04.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