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립중앙박물관, 고구려 유물 전시실 박물관의 조명 아래, 유리장 속 유물이 희미한 빛을 머금고 있었다.
“홍옥설표신수상(紅玉雪豹神獸像)”
고구려 북방에서 출토된 정체불명의 유물. 전쟁터에서 죽은 자를 인도한다는 전설 속 신수. 표범을 닮은 형상, 몸에는 눈보라를 닮은 문양, 그리고 눈에는 붉은 보석이 박혀 있었다.
나는 유리에 손을 가져갔다. 손끝이 차가운 표면을 스쳤다.
그 순간——
쨍.
공기가 흔들렸다. 모든 것이 부서지는 듯했다.
눈을 뜨자, 끝없는 설원이었다.
국립중앙박물관, 고구려 유물 전시실 박물관의 조명 아래, 유리장 속 유물이 희미한 빛을 머금고 있었다.
“홍옥설표신수상(紅玉雪豹神獸像)”
고구려 북방에서 출토된 정체불명의 유물. 전쟁터에서 죽은 자를 인도한다는 전설 속 신수. 표범을 닮은 형상, 몸에는 눈보라를 닮은 문양, 그리고 눈에는 붉은 보석이 박혀 있었다.
나는 유리에 손을 가져갔다. 손끝이 차가운 표면을 스쳤다.
그 순간——
쨍.
공기가 흔들렸다. 모든 것이 부서지는 듯했다.
눈을 뜨자, 끝없는 설원이었다.
눈이 내리고 있었다.
아니, 내린다기보다 소용돌이치고 있었다. 매서운 바람이 뺨을 때렸다. 눈을 뜨려 해도 뜰 수 없었다. 숨이 턱 막혀왔다. 너무 차가웠다. 숨을 들이마시는 것조차 아팠다.
…여긴 어디야?
머릿속이 아득했다. 정신을 차릴 틈도 없이 전신이 얼어붙을 것 같았다. 손을 뻗어보았다. 감각이 사라진 듯 손끝이 저려왔다.
그때였다.
바람을 가르며 “투둑, 투둑” 발소리가 들려왔다.
새하얀 눈 위로 검은 실루엣. 말을 타고 있었다. 눈보라 속에서도 그의 형체는 선명했다.
그 남자는 검은 망토를 걸치고, 무겁게 시선을 내리고 있었다. 그의 눈동자가 반짝였다. 새하얀 세계 속에서, 오직 그 눈동자만이 깊은 어둠을 머금고 있었다.
나는 입술을 떼려 했다. 하지만 말이 나오지 않았다. 그는 아무 말 없이 나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한참을 그렇게 바라보더니, 그가 낮고도 차가운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살아 있나.”
그의 음성은 한기보다도 차가웠다. 나는 겨우 숨을 들이마셨다. 그의 망토가 바람에 나부꼈다.
그 아래로 드러난 선, 그는 분명 인간이었다.
하지만, 묘하게 이질적인 느낌. 사람이 아니라, 눈보라 속에서 태어난 짐승 같은 느낌.
‘눈 속에서 태어난 아이.’ 이상하게도, 떠오르는 단어였다.
그가 내게 손을 뻗었다. 검고 단단한 가죽 장갑이 씌워진 손. 그러나, 손끝이 닿는 순간——
“따뜻했다”
이 혹한 속에서도, 그의 손은 얼어붙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너무도 뜨거웠다.
그는 누구지? 이 눈보라 속에서, 어떻게 나를 발견한 거지?
하지만 물을 틈이 없었다. 그는 내 손목을 단단히 붙잡았다. 그의 한기 어린 눈동자가 나를 꿰뚫었다.
“눈보라 속에서 살아남은 자는, 이미 사람이라 할 수 없다.”
그는 내 손목을 당겼다. 그리고 그 순간, 나는 더 이상 발밑이 단단하지 않다는걸 깨달았다.
“이 사람… 나를 죽일 수도 있겠다.”
출시일 2025.02.25 / 수정일 2025.02.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