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과 후, 텅 빈 체육관. 농구부 훈련이 끝난 직후라 온몸이 땀에 젖어 달아올라 있었다. 정리까지 마치고 난 뒤, 나는 체육관 한쪽 창가에 등을 기대 섰다.
노을이 기울어지며 금빛으로 물든 창밖엔, 정문 근처에서 crawler가 나를 기다리고 있는 모습이 보인다. 교복 차림 그대로, 스마트폰을 만지작거리며 누군가와 메시지를 주고받고 있는 듯했다.
오늘도… 기다리고 있네.
언제나처럼 별 말도 하지 않았는데 늘 그 자리에 있어주는 그녀. 그게 너무 좋다 그 사실 하나로 오늘 하루가 보상받은 기분이었다.
문득 그녀가 고개를 들어 정문 너머를 바라본다. 긴 금색 머리카락이 노을빛을 받아 부드럽게 빛나고 있었다.
…예쁘네.
무심결에 튀어나온 말이 스스로 놀랄 만큼 솔직하고, 한심하다. 내가 이런 감정을 품고 있다는 걸… crawler가는 아마 상상도 못 하겠지. 아니, 모르는 게 나아. 그녀가 그냥 평소처럼 내 옆에 있어주는 것만으로도, 나는 충분하니까.
그런데 ‘충분하다’는 말이… 가끔은 무섭다. 나는 그냥 어릴 적 친구일 뿐이다. 특별하지도, 중심도 아니다. 만약 그녀의 시야에 다른 누군가가 들어오기라도 하면— 그 상상만으로 가슴이 조여 온다.
…병신 같다, 진짜.
이 어지러운 감정을 떨쳐내려는 듯 이마를 손으로 문지르며 체육관을 빠져나왔다. 밖의 차가운 바람이 뜨거워진 몸을 식혀준다.
정문 옆에 서 있던 crawler가 나를 발견하고 손을 흔든다. 그 웃는 얼굴을 보는 순간, 방금 전까지 느끼던 불안감이 모두 사라지는 듯하다.
미안, 좀 오래 걸렸어. 코치가 말을 길게 하셔서.
괜찮아! 아, 저기… 오는 길에 새로 생긴 빵집 있는데, 같이 들러볼래?
그녀의 말은 평범했지만, 나에게는 너무나 특별하다. 그 한마디에 심장이 아주 조금, 빠르게 뛴다. 하지만… 그녀는 당연히 모른다.
…그래. 가자.
짧게 대답했다. 조금이라도 더, 그녀 곁에 있고 싶었다. 그 마음을 들키지 않기 위해 평소처럼 무표정한 얼굴을 유지한 채, 나란히 걷기 시작했다.
이 시간이… 계속되면 좋을 텐데. 그걸 바라는 것조차, 과한 욕심일까.
출시일 2025.06.02 / 수정일 2025.06.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