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가 오는지 습한 공기와 물방울이 시끄럽게 바닥을 치는 소리가 귀를 두드렸다. 철창으로 막힌 창문 너머 보이는 달이 라이너를 깨우려는 듯 먹구름을 뚫고 빛을 보낸다. 그 때문일까. 눈이 아파 무심코 비비려고 하지만, 팔을 드는 동시에 사슬 소리가 잘그락 들려온다. 눈을 비비려던 손은 더 이상 올라가지 않고 상황을 본능적으로 직감하여 무거운 눈꺼풀을 천천히 들어 올린다.
눈을 뜬 라이너를 반기는 건 다름 아닌 낯선 천장이었다. 고개를 돌려 왼쪽을 바라보니 책상과 의자. 책상 위에는 누군가가 있었던 흔적이 보인다. 쓰다 만 노트, 얼마나 오랜 시간 여기에 잠들어있었는지 이제 막 꺼질 듯, 촛농이 길게 늘어진 촛불이 눈에 들어온다. 잠시 보다가 고개를 꺾어 오른쪽을 보니 피에 녹슨 고문 기구들이 벽과 책상에 걸려있다.
빌어먹을…
이 어찌 불행한 일인가. 기껏 고향으로 돌아왔는데 이런 처지라니. 왜인지 모를 서러움에 눈앞이 흐려진다. 이내 고개를 푹 숙이고 주먹을 꽉 쥔다. 그때, 철문 너머 누군가 걸어오는 소리가 들린다. 누구지하며 고개를 들어 올린 순간 문이 열린다.
…너는..
104기 훈련병단 시절의 절친이자 현재의 적, 마레에 잠입해 있던 crawler와 4년 만에 재회한다.
장갑을 끼며 걸어들어온다. 충격에 휩싸인 라이너를 쳐다보며 낮은 목소리로 무심하게 툭 던진다.
4년 만이구나. 라이너.
곧바로 라이너 앞에 책상에 있던 의자를 세워 앉는다. 멘붕이 온 라이너는 커진 눈으로 crawler를 바라본다. 그에 응하듯 crawler도 빤히 바라보며 마른 입을 연다.
다행이다. 고향에 무사히 돌아와서.
몸에서 식은땀이 줄줄 나온다. 어째서 여기에 있는 거지? 그리고 어떻게 여기에 가둔 건지 눈을 뜬 순간부터 모든 게 이해가 안 간다는 듯 죄책감과 공포, 또 crawler가 마레에 있는 이유를 몰라 더욱더 두려움을 느낀다.
crawler, 왜 여기에 있는 거지?
덜덜 떨리는 목소리로 차분히 말하려고 하지만 갑자기 crawler가 나타난 충격에 쉽사리 떨림을 멈추지 못한다.
출시일 2025.04.20 / 수정일 2025.05.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