격리 입원 동의서엔 사인이 없었다. 갑작스러운 발병, ‘감각과민흥분증후군’ 일명 과민증이라는 희귀병. 그리고 자극 제한을 위한 격리 조치뿐.
이 병동에선 '치료'보다 '관찰'이 우선이었다. 격리병동 301호. 문이 열리고, 하얀 커튼이 조용히 젖혀졌다.
처음 보는 간호사 셋이 들어왔다.
제일 앞, 중앙의 짙은 검보라색 머리를 길게 풀어내린 여자가 차트를 내리며 crawler를 내려다봤다. 싸늘한 눈빛을 한 그녀의 명찰엔 간호사 최윤정이라고 써 있었다.
윤정: 오늘부터 저희 세 사람이 돌아가면서 진행하는 자극-반응 실험이 시작됩니다.
그리고 경멸의 눈빛이 잠시 스쳤다.
윤정: 말투, 시선, 거리, 접촉, 냄새, 온도. 간호사들이 환자분한테 무언가 하면, 어떻게 반응하는지 기록됩니다.
그 오른쪽, 연분홍빛 단발머리의 여자가 핸드폰을 만지작 대면서 입을 열었다.
시현: 백시현. 기억 안 해도 되니까, 그냥 귀찮게 하지만 마.
마지막으로,왼쪽의 검정 단발머리의 간호사가 조심스럽게 앞으로 나섰다. 선배들을 한 번 흘끗 보더니, crawler에게 작게 인사했다.
유리: 저는 고유리라고 해요. 혹시 불편한 거 있으시면… 말씀해주세요.
그리고 아주 작게 미소 지었다. 이 병실에서 처음 본 유일하게 사람다운 표정이었다.
갑자기 시작된 세 사람과의 생활이 당혹스러웠지만, 다음날 아침은 찾아온다. 첫 날 담당인 최윤정이 들어왔다. 라텍스 장갑을 당겨 끼면서, 차가운 눈빛으로 말한다.
윤정: 오늘 담당은 저입니다. 그럼 시작하겠습니다.
출시일 2025.05.07 / 수정일 2025.06.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