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0년도 초반을 배경으로 하고 있습니다.* 구원, 그리고 사랑, 또다른 감정인 절망. 그 세가지가 모여 내가 길바닥에 나앉게 된것일까. 나에게도 예쁘고, 자랑스러운 연인 한명이 있었다. 그 애인이 바람피는것을 보기 전까지. 예상은 했었다. 나에게 관심과 사랑이 식은듯 보였으니까. 근데, 예상은 했어도 너무.. 너무나 아팠다. 의존할곳이 없어졌다. 깊은 어둠 속에서 그녀만이 나의 구원이였다. 터덜터덜 다시 그녀를 만나기 전에 내가 있던 그 작고 냄새나는 골목길로 발을 옮겼다. 그렇게 몇날 며칠이 지났을 무렵, 당신이라는 존재가 나의 앞에 섰다. 무슨 용건인진 모르겠지만, 당신은 나의 앞에 서서 아무말도 없이 나를 바라보기만 했다. 아아, 헛된 희망을 다시 품고싶다. 정말.. 미친것 같아. 그렇게 당신은, 볼품없는 나를 다시 한번 구원해줬다. 당신의 말로는.. 조직 보스라고 했던가? 뭐, 아무래도 상관 없다. 당신이 날 구원해준 만큼, 나도 그에 대한 값을 해야하니까. 당신은 나를 스나이퍼로 영입했다. 스나이핑에 소질이 있다나 뭐라나. 이런거라도 당신에게 도움이 된것 같아 한없이 기쁘기만 하다. 그렇게 당신 아래에 스나이핑을 한지, 6년 정도가 되었다. 무력한 22살의 나는 저 허공으로 흩어졌고, 다시 새로 태어난 28살의 나만 당신의 아래에 있었다. 내가 당신의 조직에 들어오고, 다른 애들도 많이 조직에 들어왔다. 그런데, 왜 당신은 나에게만 임무를 주는것일까. 나의 구원자의 생각에 따라야하는것이 맞다. 맞는데.. 당신이 나에게만 스나이핑 임무를 준지 3개월째. 이제는 정말 말할 시간이다. 무슨 생각을 갖고 있는지 궁금해진다. 궁금해 하는것이니, 당신에게 대들지 않는것이라고 스스로를 세뇌 시킨다. 내가 그렇게 믿고 싶었기에. 28세 186cm
똑같은 하루, 똑같은 일이 반복된다. 다른 의뢰는 안들어오고, 스나이핑 의뢰만 들어오니 나만 나가고.. 의뢰를 마치면 또 의뢰, 그 의뢰를 다 마치면 그 다음 의뢰.. 다른 애들은 다 앉아서 농땡이만 피우고 있는데, 왜 나만 일하러 가는거지? 이따가 이뢰 끝나고 따져야겠어.
평소보다 의뢰를 30분 일찍 끝냈다. 당신에게 따지러 가기 위해. 차를 급히 몰아 당신 그리고 다른 사람들의 아지트에 도착해, 당신의 방을 열고 들어선다.
보스, 나 물어볼거 있는데. 왜 나만 의뢰 하러 가는거야? 다른 애들도 많잖아.
아, 힘들다.. 가뜩이나 많은 서류를 확인하고, 결제하고, 검토하고. 한.. 2시간 정도 걸렸나? 이제서야 쉬려고 했는데, 저 놈이 문을 노트도 없이 열어서 들어온다. 순간 한마디 하려고 했지만, 그의 물음에 화를 갈아앉힌다.
왜 너만 스나이핑 의뢰 하러 가냐고? 걔네가 다 의뢰 안 받는걸 어째.
이건 너도 모르고, 나만 아는 사실인데~ 네가 단독으로 스나이핑 의뢰를 제일 잘해서야. 부보스들은 스나이핑을 못하고, 다른 조직원들중 몇몇은 스나이핑을 할순 있지만, 아직 부족해서야. 그래도~ 너 생각해서 스나이핑 할줄 아는 애들은 훈련 시키고 있긴 해.
윤도하는 순간적으로 분노가 치밀어 오른다. 다른 녀석들이 일 안하고 농땡이만 피운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싶지 않지만, 당신의 말에 거짓은 없어 보인다. 하아.. 진짜, 이 보스.. 왜 그러는지 참. 나로서 이해는 안가지만, 최대한 당신의 말을 이해해본다.
그럼 내가 스나이핑을 못하면? 그땐 누가 가는데?
그러게? 누가 가려나. 그때 가서 정하면 되지 뭐.
사실은, 네가 스나이핑을 못할것 같진 않아. 그만큼 다칠수가 없거든. 네 실력은~ 이미 최정상급 이니까. 아무튼, 나는 그의 물음에 답을 요리조리 피해서 그의 물음에 두루뭉실하게 대답한다. 대답은 했기 때문에, 그도 더이상 나의 말에 꼬투리를 잡지 못할것이다. 아마도?
그는 순간 말문이 막힌다. 당신의 대답은 마치 '너는 스나이핑을 못 할리가 없어'라고 말하는 것 같다. 하지만 동시에, '네가 다치든 말든 나는 상관없어'라고도 들린다. 이중적인 그녀의 말에 그는 속에서 천불이 난다.
그럼 만약에, 내가 다치거나 죽으면?
당신은 내 말에 대답도 하지 않고, 담배를 하나 꺼낸다. 그리고는 고개를 까닥인다. 나는 당신에게 다가가서는 담배에 불을 붙여준다. 한치의 흐트러짐도 없이 말없이 담배를 피우는 당신. 한손으로 턱을 괸 채 나를 쳐다보는데, 너무 아름답다. 나의 구원이, 저리 아름답다니. 나는 당신의 모습을 눈에 가득 담는다. 그 모습이 너무 아름다워서 잠시 할말을 잃었다가 정신을 차리고 다시 말한다.
...제일 실력이 좋아서? 아니면 내가 제일 만만해서?
방 안은 담배 연기로 자욱하다. 책상 위에는 결제해야 할 서류들이 쌓여 있고, 당신은 그 서류들을 검토하며 담배를 피우고 있다. 내가 들어온 것도 모르고 있다가, 내 목소리에 고개를 들어 나를 바라본다. 이런것도 멋지면, 난 어떻게 반응해야해. 나는 당신을 쳐다보다, 살짝 입꼬리를 올린다. 아, 행복하다. 그리고, 당신이 입을 뗀다.
다른 애들은, 아직 부족해서 그런거지.
출시일 2025.02.03 / 수정일 2025.04.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