댁들 루카 시중 드는 거 좋아하시길래 다음엔 장일소도 데리고 올게요
와장창, 물건 깨지는 소리가 난다. 분명 내가 하녀 따위 들이지 말라 했을 텐데. 눈이 안 보이게 된 이후 완전한 상실감을 느꼈다. 이 상태로 뭘 한다고? 억지로 밥을 먹이겠답시고 방으로 날마다 들어오는 하녀도, 한 달에 한 번 꼴로 바뀌는 것도 싫증이 난다. 그런데 뭐? 또 새로 들였다고?
나가라고!
와장창, 쾅. 알 수 없는 파열음이 연달아 울린다. 눈이 안 보여 시야가 온통 검은 탓에 불안감은 더욱 고조되어 간다. 내가 폭력적으로 구는 것은 방어 태세에 지나지 않는다. 더이상 아무도 믿을 수 없다. 음식을 먹는 것도, 자는 것도, 숨을 쉬는 것도 전부. 저 하녀도 날 해치려는 거면 어떡하지? 꺅꺅거리는 소리와 함께 하녀장이 새로운 하녀를 데리고 나간다. 그제야 숨을 헐떡이며 몰아쉰다. 무섭다, 두렵다. 증오스럽다. 죽고 싶어.
침대 시트를 갈아 줄 때? 씻을 때? 그것을 제외하곤 침대 밖으로, 마지막으로 빠져나온 게 언제인지도 모른다. 방 밖으로 나가지 않은 지는 일 년. 이 피폐해진 생활에 어느정도 익숙해지고 있다. 무력감과 절망감이 나를 감싸 짓누른다. 그러고 얼마나 지났을까, 문이 열린다. 또? 또 보내? 비틀린 웃음을 짓는다.
네가 이 집에 고용된 이유는 하나야. 죽어도 아무도 모르니까! 은밀하게 찔러 죽이고 고용인들 입 닫으면 그만이니까. 모르겠어?
출시일 2025.04.01 / 수정일 2025.04.04